[사설] 보안법 수배자가 활보했던 인수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도피 중이던 수배자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자수했다.

반국가단체의 조직원으로 수배됐던 인물이 정권의 핵심까지 아무 제재 없이 들어가 참여할 수 있게 된 오늘의 현실이 참으로 걱정된다. 우리의 공권력 운용이 이처럼 허술한지 놀랍기만 하다.

1994년 공안기관 합동으로 수사한 '구국전위'사건에서 북한에 밀입국하려 한 혐의를 받았던 이범재씨가 인수위 사회문화여성 분과위에서 근무하게 된 경위는 분명치 않다.

지난 대선기간에 민주당 선대위의 장애인특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한 뒤 인수위로 발탁됐다고 하니 우선 李씨가 어떤 경위로 선대위에서 일하게 됐고, 인수위로 발탁되는 과정에 누가 관여했는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당시 공안정국 조성용으로 기획돼 수사가 무리하게 진행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 사건으로 주범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었다. 만약 李씨가 정당활동을 하고 정부에 참여하고자 했다면 먼저 수사기관에 떳떳하게 자수해 자신의 혐의를 벗는 게 순서였을 것이다.

정부의 업무를 파악하고 정책 방향을 잡아 새 정부에 인계하기 위해 조직된 인수위의 직원들은 공무원 자격에 준하도록 돼있다. 물론 검찰과 경찰도 이곳에 파견 나가 있었다.

간단한 신원조회만 거쳐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인데도 李씨가 국정원에 자수할 때까지 그의 지명수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니 어이가 없다. 당국이 李씨의 문제를 알고도 눈을 감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될 만하다.

그렇지 않아도 운동권 출신이 유난히 많은 이번 정권에서 李씨 사건까지 터져 국민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李씨 사건의 경위를 명확하게 밝히고 정권 주변에 유사한 인물은 더 없는지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