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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처의 독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시내 청량리에 소재하는 임업시험장(구 홍릉) 일대에 세우기로 한 과학연구「센터」의 건축부지를 에워싸고 과학기술처와 국내 임학 및 생물과학 관계자들 사이에 이견이 두드러져 식자층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학기술처가 추진 중에 있는 「마스터·플랜」에 의하면, 동 「센터」는 현 임업시험장이 관장하고 있는 수목원·초본원 및 약초원 등을 포함한 일체의 시설을 다른 곳으로 철거 이전케 하고, 그 자리에 과학원 산하기관들을 건립키 위해 이에 따르는 임야부지 및 수목원관리권의 이관을 산림청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림청 당국자는 그 대안으로서 현 과학기술연구소(K1ST)에 인접해 있는 임야를 사용토록 권고한바 있으나 과학기술처가 이를 전면 거부하고, 자신들의 외고집을 굽히려하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전기한바와 같이 임학 및 생물과학관계 6개 학회로부터 맹렬한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라 한다.
과학기술처당국이 꼭 현 임업시험장자리를 신설되는 과학연구 「센터」의 부지로 쓰겠다고 고집하는 데에는 물론 그들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현 임업시험장은 산림청이 대안으로서 제시한 임야부지보다는 훨씬 교통편의가 좋고, 경사가 완만한 평지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거기다 수십년 동안 공들여 가꾸어 놓은 조림 때문에 풍치로 보거나 건축상 이점으로 보거나 누구라도 탐낼만한 건축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처당국이 이와 같은 이유만으로 외고집을 부린다면 그것은 누구의 눈에도 지나친 독선적 처사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 임업시험장(약 30만평) 안에 조성돼 있는 수목원·초본원 등의 수종 및 초본류 등은 과거 반세기에 걸친 적공으로 비로소 그 존재가 가능하게 된 국내 유일의 국보급 임업시험시설인데다가, 여기에 심어진 1천6백여 종의 수십년 생 수목이나 초본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거나, 비전문가에게 그 관리를 위탁케 한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가 임산 진흥과 생물과학의 존립 자체를 말살하려하는 것이나 다름없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이 나라 과학기술의 진흥을 균형 있게 주도해야 할 정부의 과학기술주무부로서의 과학기술처가 공업기술분야를 두둔하는 나머지, 여타과학기술의 발전에 치명적인 암영을 던질 시책을, 그나마 하찮은 교통편의 또는 풍치상의 선호 때문에 고집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탈선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농림수산학회, 식물학회, 육종학회, 임학회 등 국내의 전 생물과학자들을 망라한 6개 학회가 공동명의로 제출한 건의서에 의하면, 현 임업시험장이 관리·조성의 임무를 맡고 있는 식물원, 초본원 등의 시설과 이에 부설된 목재공업연구시설들이 현 위치를 고수해야할 필요성에 관하여 개진한 이유는 누구의 눈에도 그 정당성이 소소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5백여만의 대 인구를 가진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현 임업시험장시설들을 타처로 옮겨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또 불필요한 국비의 낭비라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정부로서는 특히 그와 같은 울창한 산림이 있음으로써 얻어지는 국내 임산공업(펄프·죽재·합판공업 등)의 진흥효과와 공해방지 및 정서면에서 무형적 효과 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영국 런던의 「큐·가든」, 미국 「하버드」대학의 아놀드 식물원, 「인도네시아」「자카르타」의 「보골」식물원 등이 되기까지 얼마나 장구한 세월과 막대한 투자가 필요했던 가를 상기할 때, 이제 1922년 이래의 역사를 가진 홍릉 임업시험장시설을 사실상 말살하려는 어떠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리는 강력히 반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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