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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진 축전발걸음-월남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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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남전의 월남화 계획과 연합군의 철수가 더욱 가속화할 71년. 그러나 연초부터 강경으로만 치닫는 양쪽의 자세는 평화「무드」를 움조차 트지 못하게 했다. 짤막한 신정휴전이 끝나자 작년과 거의 다름없는 「전투의 쳇바퀴」가 시작되었다. 극적인 호전의 전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미국이 축전의 첫 거보를 내디딘 후로 그 발걸음이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이공」정부의 붕괴시까지 계속 투쟁하겠다는 월맹 측의 태도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전면휴전이나 종전의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한 것이다.
발길을 돌리고있는 미군들의 태도도 그렇게 석연하지는 않다. 어느 미군고문관의 말대로 『대규모 전에서는 이겼지만 소규모 전에서는 패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시인하고있기 때문이다. 소규모 「게릴라」전·경제적 불안·민심의 이반 등으로 집약되는 「소규모 전」의 양상은 그만큼 심각한 일면을 갖고 있다. 「갤러핑·인플레」와 물가고, 만성적인 적자예산과 무역역조는 군사정세의 호전에 뒤따라야 할 정치·경제의 안정토대구축에 장애가 되고 있다. 정부측의 공식발표로는 1천7백만 월남인 가운데 99%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 측의 추산에 의하면 월남정부의 공식집계와는 좀 거리가 있다.
이처럼 내부의 종기가 완전 치유되지 못한 채 축전과 평화에의 발길은 바쁘게 움직여왔다. 그러면서도 거의 모두가 원점에서 맴돈 것에 불과했다.
『평화에의 왕도』로 간주되었던 「파리」회담은 오는 25일로 만 2년을 맞는다. 그러나 2년간의 성과는 「왕도」가 「설전의 광장」으로 평가 절하되었다는 사실밖에 없다. 애초부터 기대를 걸지 않았던 월남정부는 물론 「사이공」의 지식인들도 이젠 염증을 느낀 듯 하다. 『결렬도 안되고 진전도 없는 서글픈 기적』이라고 자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화에의 전망이 전혀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극도의 축전』이나 『종전』을 「평화」와 같은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더욱 그렇다. 마치 무언극처럼 소리없이 종전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다.
미군들의 급속한 철수는 이를 응변적으로 말해준다. 69년 여름 54만3천명에 이르렀던 대군이 불과 1년 반이 지난 70년12월말현재 34만4천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닉슨」대통령은 오는 5월말까지 28만4천명 선으로 줄일 것을 다짐했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은 누가뭐라든 축전으로 계산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관계전문가들은 이 축전을 종전의 첫걸음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지난 11일 박정희 대통령의 「주월 한국군의 단계적 철수검토」발언으로 심증을 굳혔다. 한국군의 철수는 사실상 주월 연합군의 기치를 내리기 시작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종전에의 행진은 이제 눈에 띌만큼 활발해졌다. 그러나 개전 초기부터 도사리고 있던 갖가지 복병들은 조금도 없어지지 않았다.
월맹 측은 미군철수와 『상응하는』월맹정규군의 귀환조치를 거부했다. 월맹상공에 대한 미군기의 정찰을 묵인하겠다는 묵계(미국 측 주장)도 파기했다. 「사이공」정권의 전복이라는 최종목표에도 의연 변함이 없다. 미국도 월남화 계획과 미군철수라는 큰물줄기를 잡아놓고서도 『눈에는 눈』이라는 원시적 살상정책을 병용하고 있다.
『손을 뗄 때까지의 명예』는 그만큼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군정찰기에 대한 공격을 부분폭격으로 보복한 일, 정규군의 계속남파가 전면 북폭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경고 등은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군사전문가들은 미군철수에 상응하는 월맹군의 귀환조치가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해왔다. 「티우」정권의 자활을 위해서도 그렇고, 평화의 조기달성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라는 얘기이다.
이 같은 주장을 반증이나 하듯 미국은 월맹 안의 미군포로에 대해 지나칠 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 월맹정규군의 상응철수와 미군포로문제가 어떤 비중으로 다뤄져 왔는가를 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있는 일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은 억류포로의 구출을 위해 대규모의 특공대작전을 폈다. 그것도 「하노이」 바로 근교에 투입한 것이다. 「닉슨」대통령의 허가가 있었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이것은 평화「무드」전체에 영향을 줄수 있을 만큼 과감한 행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닉슨」자신은 제2, 제3의 「손타이」작전도 『있을 수 있다』고 밝힘으로써 미국의 「인터레스트」가 어디에 있는가를 명시했다.
월맹 국방상「보·구엔·지압」은 미군기의 정찰허용에 관한 묵계설을 정면으로 부인했고 『최후의 승리』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여전히 모든 공식성명을 뒤엎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철수」와 「북폭재개」의 쌍곡선은 올해에도 계속될 것 같다. 말하자면 「큰 월남전」의 하향곡선과 「작은 월남전」의 간헐적 기복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이공=신상갑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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