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극작가 유치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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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로운 각오, 새로운 의욕으로 맞은 71년 문화계는 과연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 것인가? 여기 71년 문화계를 리드해갈 각 분야의 의욕에 찬 얼굴들을 찾아 그분들의 구상과 비전을 들어본다. <편집자>
연극의 전당으로 출발한 드라머·센터가 오랫동안의 동면을 깨고 새해부터는 레퍼터리·시스팀극장으로 재출발, 면모를 바꾼다.
연극계의 원로이며 드라머·센터소장인 유치진씨(65)는 『슬럼프에 빠져있는 우리 연극을 구제, 육성하는 길은 이 레퍼터리·시스팀(자기극단의 공연물을 정해놓고 되풀이 상연하는 방식) 뿐』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우리 실정으로는 워낙 힘겨운 사업이기 때문에 올해는 기초조사쯤하는 시험단계로 삼아 이 레퍼터리·시스팀이 정착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국립극장에서 각 극단이 봄·가을 시즌에 각각 5일간씩 공연하는 방식으로는 연극을 제대로 익히게 되기도전에 막을 내리게돼 정력과 돈의 낭비일뿐이고 연극은 발전할 수 없다고 그는 단언한다. 그것도 연기자들이 TV·라디오·영화등에 얽매어 연습부족이 대부분이니 그런 연극으로는 관객에게 연극에 대한 신뢰감과 매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수도 장기의 래퍼터리가 있고 배우도 자기에게 맞는 배역이 있는데 극단에도 자체의 레퍼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희곡도 남지않고 연출도 남지않고 무대장치등 모두 남는 것이 없어 방송으로 하늘에 날리는 것과 같이 허무할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레퍼터리·시스팀은 인기스타를 내세우는 스타·시스팀과는 반대로 연출·캐스트·무대등이 앙상블을 이뤄나가는 것이고 따라서 상업성과 거리가 멀어 경제적 고난을 이겨나가는 것이 문제다.
유소장은 『우리 연극을 위해서는 이 래퍼터리·시스팀이 꼭 있어야겠는데 그 고난을 견뎌나갈지가 의문이예요. 이 시스팀은 공연이 아니고 그 자세가 바로 공부인데 여기에 참가하는 연극인들의 각오가 단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2∼3년 걸려야 이 레퍼터리·시스팀의 확실한 성과가 나오겠지만 처음엔 손님이 없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즐기고 만족할 수 있는 무대를 꾸미겠어요. 그렇게 되는동안 관객도 새롭게 인식하고 같이 즐기게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지금까지는 연극인이 스스로 즐겁지 않게 연극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관객이 안들더라도 시시한 연극은 하지않겠다는 것이다.
드라머·센터는 62년4월 연중무휴 매일공연을 목표로 개관했으며 8개월동안 6개 작품을 공연하고 63년l월부터 대관하는 극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치진씨는 드라머·센터가 『불명예스러운 공연창고』가 된 원인으로 그 당시에는 극단도 신협 제작극회 실험극장뿐이어서 연극할 사람이 없었던 것을 첫째로 꼽는다.
둘째로는 연극인이 적으면 소인극이라도 계속할 수 있었겠지만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었던점과 세째로 연극인구가 지금같이 많지않아 관객동원이 안되었던 점, 또 극장의 입지조건이 좋지 않은 점등을 든다.
『처음 드라머·센터를 지을때는 공연창고로서 지은 것이 아니라 그속에 예술을 담으려고 했던 것이예요. 이제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새해부터는 레퍼터리·시스팀을 밀고 나아가 이땅에 연극을 뿌리박게 하겠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드라마·센터의 레퍼터리·시스팀계획은 1년중 봄·가을 시즌은 공연, 여름·겨울은 연습으로 잡고 봄·가을에 각각 3편의 작품을 되풀이 공연한다는 것이다. 또 3편중 2편은 신작으로 하고 1편은 장래를 위한 재상연물로 할 계획이다.
올해는 봄공연을 앞당겨 1월17일부터 『러브』(머리·시스걸작·오태석연출), 『생일파티』(해럴드·핀터작·유덕강연출=재공연)와 창작극 1편등 3편을 보름씩, l주일씩 돌아가며 5월말까지 공연키로 짜여져 있다. 이 3편중 성과가 좋은 작품은 1개월간 장기공연하고 또 가을시즌으로 넘어가 재상연할 계획이다.
『연극은 재상연에서 닦고 갈아 빛을 보는 것이고 또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영화의 리바이벌정도로 밖에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한다.
영국에서는 한 작품을 스트레이트로 20년 가까이 공연하는 예도 있고 미국에서는 지방순회공연을 먼저 가져보고 고칠 점을 다 고치고 다듬은 후에야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의과대학이 부속병원을 가진 것과 같이 연극학교를 중심으로 한 극장들이 활발한 연극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유치진씨는 서울연극학교를 통해 인적자원을 확보해가면서 드라머·센터를 발전시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현재로는 드라머·센터의 관객이 하나도 없는 것과 같지만 레퍼터리·시스팀으로 우리들의 공부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열심히 연극을 하면 관객이 버리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게되면 무대와 관객이 같이 개발되어 나아갈거예요.』
『연극공연은 연극을 전공으로하는 사람에게만 맡길 것이고 상연은 충분히 익은 다음에 막을 올리겠어요.』 흥행보다 연구가 위주며 알찬 완성을 지향하는 이 레퍼터리·시스팀을 꼭 성공시켜 보이겠다고 말하는 유치진씨의 노안에는 열의로 가득찬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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