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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김원홍 배제한 2심 판결 적절성 고심할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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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호 03면

SK 최태원 회장 형제는 대법원 상고심에서 자신들의 ‘무죄’ 주장을 입증할 수 있을까.

SK 총수형제 동반 실형선고 그 이후

지난 27일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4년과 3년6월형을 선고받은 최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은 재판 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K 측은 “판결문을 송달받는 대로 분석작업을 벌여 상고 이유서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 2심에서 잇따라 유죄를 선고받은 최 회장은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 2월 초 SK 관계자들은 최 회장 사건이 서울고법 형사4부에 배당됐다는 소식을 접하곤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재판장인 문용선(55·연수원 15기) 부장판사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다. 법조계 일각에서 “문 부장판사가 피고인을 다그치는 형식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는 지적이 나온 터였다. 1월 31일 최 회장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상황에서 항소심 재판부마저 강성으로 알려지면서 SK 측의 긴장감은 커져만 갔다.

최 회장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SK텔레콤과 SK C&C가 펀드 출자 명목으로 조성한 1500억원 중 465억원을 횡령한 것과 2005년부터 2010년까지 SK계열사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과다 지급한 뒤 다시 돌려받는 형식으로 139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다. 이 중 139억원의 비자금 조성 혐의는 1심에서 무죄가 나 최 회장의 입장에선 펀드자금 횡령 의혹만 해소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에 SK 측은 최 회장의 변론이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SK 측의 우려는 4월 8일 항소심 첫 재판이 열리면서 현실로 다가왔다. 1심 때의 김앤장을 대신해 항소심 구원투수로 나선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들은 “최 회장이 펀드 출자금 조성에 관여한 적이 없다는 1심 진술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특히 “횡령 혐의가 있는 펀드 인출에는 관여한 바가 없고, 인출 자체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이 펀드를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출 부분은 모른다는 논리였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최 부회장이 “그동안 펀드 출자와 인출을 모두 내가 주도했고, 형인 최 회장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재판 전략과 전술에서 모두 실패
이 같은 전략 수정은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물론 여론의 불신을 초래한 계기가 됐다. 법률적으론 말이 될지 몰라도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논리였다는 지적과 함께 재판부의 힐책이 이어진 것이다.

SK 측은 이어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실체를 공개했지만 오히려 “재계 서열 3위 기업의 오너가 무속인인 ‘묻지마 회장’에게 놀아났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문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재계 3위의 대기업 회장과 부회장이 김원홍에게 홀려 수천억원을 홀딱 빼앗겼다”고 지적했다. SK 측의 입장에선 최 회장 형제가 김원홍씨와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에게 속아 사기를 당했다는 부분을 강조하려 한 것이었지만 법률적으론 앞뒤가 맞지 않은 논리 구성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최 회장 형제가 설사 김원홍씨에게 속아 돈을 빼냈더라도 횡령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며 “횡령한 돈을 사기당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SK 측은 한화그룹 사건을 맡았던 민병훈 변호사에 이어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의 이공현 변호사를 긴급 투입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문 부장판사도 판결문에서 “최 회장이 도대체 어떤 법률적 조력을 받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재판 전략과 전술에서 재판부를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지법의 한 부장급 판사는 “문 부장판사의 재판 스타일을 두고 일부에선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건 사실이지만 판결 결과와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향후 대법원 재판은 어떻게 진행될까.

상고심의 경우 항소심의 법률 적용이 타당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어서 법률적 공방은 없다. 따라서 SK 입장에선 김준홍씨의 요청을 받은 김원홍씨가 최 회장을 속이고 펀드 조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돈을 불법적으로 인출하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부분을 다시 한 번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SK 변호인단은 “김준홍씨가 최 회장과 특별한 관계에 있던 김원홍씨에게 부탁해 펀드 조성이 이뤄졌으며, 돈을 인출하는 경위에 대해선 최 회장은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김원홍씨에 대한 증인 신문 없이 이뤄진 항소심 재판은 법률적으로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도 “이번 사건의 경우 김원홍씨가 매우 중요한 증인”이라며 “김씨에 대한 증인 신문이 없는 상태에서 재판을 끝낸 항소심 판결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대법원에서도 고심을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원홍 고문의 개입 입증이 관건
SK 측은 또 검찰과 1심 재판에서 줄곧 최 회장의 관련성을 부인해 오던 김준홍씨가 항소심 재판 막바지에 “최 회장도 펀드 불법 인출을 알았을 것 같다”고 말한 것 말고는 최 회장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나 자료가 없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SK 변호인단 중 한 명은 “검찰을 비롯해 1, 2심 재판부가 김준홍씨의 말만 듣고 최 회장의 주장은 배척했다”며 “형사소송법상 유죄 입증 증거가 없으면 무죄를 내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SK 측은 특히 “펀드의 돈 중 김원홍씨에게 간 450억원이 200억원, 150억원, 100억원 등 세 차례에 걸쳐 전달된 만큼 이 중 한 번이라도 최 회장이 관련되지 않았다면 피고인을 위해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SK 측 주장이 대법원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SK 측의 무죄 주장보다는 1, 2심의 판결이 사회통념상 더 설득력이 있다는 법조계 일각의 분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한 변호사는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사건 전체를 문제 삼아 뒤집기를 시도하기보다는 법률 적용의 문제점이 있는 조밀한 부분을 찾아내 이를 연결고리로 파기 환송을 시키는 전략을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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