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류의 중독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2호 31면

나는 주말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을 즐겨 본다. 보고 나면 문득 “도대체 무엇이 이걸 일주일 동안 기다리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슨 영웅 서사시도, 스케일이 큰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게 ‘한류’의 힘이지 싶다.

한류(韓流)라는 말이 중국에서 처음 나온 것은 1999년 베이징에서 열린 HOT 공연 직후다. 당시 한 중국 기자가 ‘한국의 문화 흐름’을 기상 용어인 ‘한류(寒流)’에 빗대 표현한 게 시작이었다. 그 후 ‘한류’라는 말은 당시(唐詩)의 한 구절인 ‘홀여일야춘풍래(忽如一夜春風來:하룻밤 봄바람 불어오는 듯하더니), 천수만수리화개(千樹萬樹梨花開:온 산의 배꽃이 하얗게 피었구나)’처럼 빠르게 퍼져 나갔다.

중국에서도 많은 친구가 나처럼 한국 드라마에 빠지거나 K팝에 심취돼 있다. 어느 중국 매체가 지난해 뽑은 2012년 10대 키워드 중에 ‘강남스타일’이 꼽혔다. 가수 싸이는 ‘새아저씨(鳥叔)’라고 불린다. 한국 문화는 왜 아시아에서, 심지어 유럽·남미에서도 통할까? 한국 문화 속에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을까?

대부분의 중국인이 처음으로 접한 한국 드라마는 ‘대장금’이다. ‘진시황’ ‘한무제’와 같은 중국 드라마 속의 영웅과는 달리 대장금은 천민 신분인 여자가 주인공이다. 스케일이 큰 장면은 없지만 조용하고 소박한 정원에서 주인공의 꿈과 희망을 그려 냈다는 점이 중국인을 감동시켰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에 빠지면서 점차 한국인의 심성을 이해하게 됐다. 프랑스식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처럼 담담하고 뭉클하고, 미국식 사랑은 에로스 사랑처럼 솔직하고 자유로우며, 홍콩식 사랑은 필레오적 사랑처럼 시작하다가 정의와 금전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다. 한국식 사랑은 플라토닉 사랑처럼 깊고 잔잔하다. 노을이 붉게 타는 석양 아래 남자 주인공은 곧 생을 마감할 여자 주인공을 등에 업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아름다운 옛날을 회상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가는 고통 속에서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삶의 향기를 피운다. 흔한 스토리지만 현대사회에 찌든 우리의 감정을 건드린다.

중국 사회는 지금 전환기다. 급속하게 바뀌는 경제환경만큼이나 사회 역시 공동가치관의 부재로 인해 위기에 빠져 있다. 정통 문화로는 더 이상 중국인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고, 오락성을 중시하는 홍콩·대만 문화로는 ‘진·선·미’에 대한 원시적 추구를 만족시키기에 역부족이다. 서양 가치관을 기초로 한 미국 문화는 중국인들에게 너무 멀리 있다.

때마침 한류가 들어왔다. 한국 사회는 이미 1980~90년대 중국과 비슷한 고민을 겪어 왔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전통 가치관과 현대적 가치관 간의 갈등이 묻어난다. 한국인들은 이런 갈등을 기본적인 윤리도덕과 가족애, 사랑, 우정 등으로 해결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가난하거나 서민 출신이다. 하지만 남존여비의 전통 가치관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삶을 바꾼다. 자주 등장하는 고부 갈등도 역시 전통과 현대 사이의 충돌 가운데 일부다. 전통을 대변하는 시어머니, 현대를 대변하는 며느리가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의 차이 때문에 수없이 충돌하지만 끝에 가선 언제나 현대가 전통을 존중하고, 전통이 현대를 이해하면서 서로 융합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한류는 바로 유교사상과 미국 문화, 국제화와 본토화, 전통 윤리도덕과 현대적 가치의 충돌·융합을 통해 새로운 동양식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과정을 그려 준다. 그래선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중국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위대한 자연에서 피어난 꽃이 가장 아름답다. 중국인들도 자유로운 사유를 막는 심리적 성벽(城壁)을 깨뜨리고 창의적인 사상의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천리 1979년 중국 선양(審陽)에서 태어나 선양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숙명여대 박사과정 수료. 한국에 온 뒤 주로 비즈니스 중국어를 가르쳐 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