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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운의 독 군 수 재벌|크루프가 후손 부채로 피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백50여 년 동안 세계의 강철·군수 업계를 주름 잡았던 독일「크루프」가의 유일한 혈육인「라른트·크루프」씨(32)가 전직 비서에게「나이트·클럽」운영을 맡겼다가「클럽」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넘기면서 비서로부터 10만「마르크」(약 9백만 원)의 배상청구소송에 몰렸다.「아른트」가 그 동안의 급료와 부채지불을 거절한 때문.
연수 4백만「마르크」(약 3억6천 만원)의 이 젊은「크루프」씨가 10만「마르크」를 내놓지 않으려고 인색해진 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2차 대전 후 연합국 측은「크루프」가를 전범 제l호로 지목하여 완전 해체·몰수해 버렸다.「히틀러」가 사용한 중장비에「크루프」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
그러나 51년 미국은 몰수했던 재산을 5대「크루프」인「알프레트」씨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가 헌 에 따라 사장 화하고 있는 석탄산업에 집착한 나머지 재정이 기울기 시작, 개인 기업으로는 세계 최대인「크루프」상사는 67년에 7억5천만「달러」의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다.
워낙 서독 경제에서「크루프」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이 기업의 개편을 요구했다.「알프레트」는 이 요구에 응해 그 개편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60세 생일을 2주일 앞두고 67년 7월 폐암으로 사망했다.
이렇게 되자「크루프」가의 운명은 자연「알프레트」아들인「아른트·크루프」에 쏠리게 되었던 것.
그러나 경영난에서 오는 복잡한 관계, 정부의 압력 등에「머리」를 쓰기 싫어했던 그는 「크루프」재단을 설립,「크루프」가의 기업을 관리하도록 하는데 동의하고 일생동안 해마다 2백만「마르크」(약 1억8천만 원) 씩 받기로 했다.
그러나 2백만「마르크」란 금액은 그가 호화로운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나 모자라는 액수였다.
그는 이외에도 본래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토지, 건물 등을 처분하여 해마다 2백만「마르크」를 더 마련해 사용해 왔다. 그가 물 쓰듯 뿌리는 이 금액은 거의가「파티」나 여행비용에 충당되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그의「궁전」에는 72명의「하인」이 1년 중 쉬지 않고 대기상태에 있으며「파티」가 한번 벌어지면 72개의 방이 모자랄 정도로 손님이 붐 빈다.
이처럼 1년에 4백만「마르크」를 순전히「놀이」에 탕진하는 그로서 비서에게 10만「마르크」를 선뜻 내 준다는 것은 그 만큼 자신의「즐거움」을 빼앗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독슈테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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