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재계, 'SK 회장 형제 실형' 무겁게 받아들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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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SK그룹 사건 항소심에서 최태원 회장에게 징역 4년,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에게 징역 3년6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법원이 재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문용선)는 어제 최 회장 형제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450억원대 횡령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최 부회장도 이날 선고로 법정 구속됐다. 대기업 오너 형제에게 동시에 실형이 선고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날 재판부는 양형(형량 결정) 이유에 대해 “대규모 기업집단 최고경영자가 지위를 악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할 경우 경제질서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 형제의 유무죄는 다시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된다. 분명한 건 기업 범죄에 대한 법원의 엄벌 의지가 계속해 확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김 회장 사건은 그제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됐으나 형량이 바뀔지는 미지수다. 구자원 LIG 회장과 아들인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은 사기성 기업어음 발행 혐의로 지난 13일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회장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 재판에서 밝힌 ‘반성의 뜻’도 크게 참작하지 않고 있다.

 과도한 엄벌주의에 따른 부작용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익(私益)이 아닌, 순수한 경영 판단까지 광범위하게 사법적으로 규율하게 되면 투자와 경영이 위축되기 마련이다. 범죄와 비(非)범죄의 경계선을 보다 명확히 획정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 차원에서도 회사 돈과 대주주 돈을 혼동하는 구태는 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 경영 전반에 있어 준법의식과 투명성을 높여 나가는 노력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는 이제 기업인들에게 권한에 맞는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재계는 이러한 변화를 경영의 상수(常數)로 받아들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