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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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2월 초순 날씨로는 포근한 일요일 오후이기에 가벼운 스웨터 차림으로 시장입구에 들어섰다. 다리목 김장시장에는 한쪽 구석에 얼마 안되는 분량의 채소가 부려져있고 비교적 붐비는 사람수에 비하면 오히려 채소가 달리는 현상이다. 시내 중심가인 우리동네만 하더라도 아직 김장 못한 집이 반절은 넘는데 배추 상품 한포기가 돼지고기 한근 값에 해당되니 숫제 무우로만 총각김치며 깍두기를 알뜰히들 담는다. 우리 나라의 겨울찬으로는 역시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것이 김장인가보다. 그러나 올해는 채소의 품귀로 나날이 값이 뛰어올라서 유례없는 가격이라 주부들의 발을 구르게 한다.
그이는 오늘 장난기 있는 표정을 짓고 하는 말이 김장인사를 받으면 배추 반접에 무우 두접으로 네 식구 김장을 했노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 남들이 그러한 여유를 부러워하기에 말을 이어 비용 이천오백원정이라니까 두번 놀라더라고 하여 같이 웃었다. 우리집은 그리 서두르지는 않았으나 갑자기 추위가 몰아온 이튿날 김장시장에 나가니 밤새 채소가 푹 삶은 듯 얼은 것도 있어 비교적 싼 듯한 천원짜리 배추 반접과 총각김칫거리 주먹만큼씩 한것 두접을 절여 담그니 큰 독 하나는 넉넉했다. 아무쪼록 내년에는 채소풍년이 들어 가뜩이나 쌀쌀해져 가는 계절의 문턱에서 절실한 걱정거리로 마음초조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김명자(주부·대전시대흥1구150 동국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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