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세금 어디 쓰이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2014년도 예산안은 복지 중심의 대선공약을 지키고 경제도 살리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뒷받침하기 위해 짜였다. 상충되는 목표를 모두 맞추려다 보니 우선순위와 원칙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예산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357조70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은 크게 경제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 복지 확충, 국민 안전 등 네 가지에 집중된다.

 부문별로는 보건·복지 분야의 덩치가 가장 크고 올해 대비 증가율도 가장 높다. 105조8726억원으로 8.7% 늘어났다. 정부는 역대 최초로 복지 100조원 시대에 진입했다고 자랑한다. 기초연금 축소 발표로 이미 홍역을 치르긴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공약인 ‘국민행복’을 최대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전세자금 지원에 9조3643억원을 지원하는 등 주택 분야에서만 18조2623억원이 투입된다. 기초노령연금 지원에도 5조2002억원이 들어간다.

사병 월급 15% 올려 상병 13만4600원

‘국민행복’ 공약의 일부인 교육에도 50조8176억원이 투입된다. 올해 예산보다 2.1% 증가한 수치다. 초점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교육비 부담을 덜겠다는 것이다. 우선 소득 수준에 맞춰 대학등록금을 차등 지원하기로 했다. 셋째 아이 이상 대학등록금은 국가에서 대기로 했다. 올해 셋째 이하인 대학 재학생 중 1학년을 지원하고 이후 연차적으로 확대해 2017년에는 4학년까지 혜택을 받도록 했다. 다만 전액이 아니라 국가장학금 지급 기준액인 450만원 한도 내에서다. 하지만 대선공약에서 얘기했던 반값 등록금 지원, 셋째 아이부터 등록금 전액 지원 같은 말은 쏙 들어갔다.

 국방예산도 눈에 띈다. 올해보다 4.2% 늘어난 35조8001억원이다. 병력운영에 가장 많은 14조7958억원이 들어간다. 구체적으로 사병 월급이 15% 올라 상병 기준으로 월 13만4600원을 받게 된다. 최근 입찰이 무산된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포함한 방위력 개선에는 이보다 적은 10조6982억원이 들어간다.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에 402억원

 외교·통일 부문 예산은 4조2080억원으로 적은 편이지만 올해 대비 2.1% 늘어난다. 눈에 띄는 항목은 402억원이 배정된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이다.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이 사업을 위해 내년에 지뢰제거 비용 240억원, 발주용역 비용 10억원을 투입한다. 남북 간 합의도 되지 않은 DMZ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혈세를 쓴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DMZ 평화공원 조성사업은 몇 년 동안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도 알 수 없는 사업이다.

 사실 박근혜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분야는 경제다. 이번 예산안에는 실물 경기를 살리고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사업이 대거 포함됐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부문 예산은 올해보다 1.7% 줄어든 15조2528억원이다. 하지만 규제 완화나 제도 개선을 통한 간접적인 지원을 감안하면 체감효과는 더 커지리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수출기업 경쟁력 살리기, 투자활성화 지원, 중소기업·소상공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은 예산이 늘었다.

일자리 부문 7.7% 증가 11조8042억

 경제 살리기의 또 다른 축인 일자리 부문에도 올해보다 7.7% 증가한 11조8042억원이 들어간다. 청년·여성·장년 등 계층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원과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이 주 내용이다. 경험 많은 실버세대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 발굴 등 노인 일자리를 기존 25만2000명에서 31만7000명으로 대폭 확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색적인 사업도 일부 포함됐다. 백두대간 수목원 호랑이 숲 조성(19억9200만원), 남극 장보고기지 건설 등(689억원), 장날 목욕탕 설치지원(9억원), 말 산업 육성(201억원) 등이 그것이다.

 이화여대 박정수(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예산안은 복지공약과 경제살리기의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역력하다”며 “올 5월 공약가계부 발표 때 세출 구조조정으로 84조원을 만들어내겠다고 한 대로 SOC나 교육·복지 부문 등에서 대폭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예산의 경우 사병 봉급을 올려주는 것보다 전력증강사업을 제대로 지원하는 게 시급하다”며 “최근 차세대 전투기 사업 입찰이 무산된 것이나 대잠어뢰 홍상어 시험발사 실패 역시 예산지원이 충분하지 못해 생겨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최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