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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하반기 연극계|여석기<고대교수·연극평론가>|침체 벗은 가을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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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침체라는 한마디로 평해 치워 버리는 습성에 젖은 한국 연극계에 가을 들어 얼마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 몇 가지 징조를 들어 이해의 연극이 그리 보 잘 것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기록을 남겨두고자 한다.
필자가 여기서 징조라 고했지만 그 전부가 공연과 관련된다. 그래서 먼저(공연 순으로)작품 이름을 들어보면『고도를 기다리며』(베게트 작·임영웅 연출),『생일파티』(핀터 작·유덕형 연출),『허생전』(오영진 작·허규 연출), 그리고『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최인훈 작·김정옥 연출)의 4편이 바로 그것이다.
대체로 9월말에서 11월 중순에 걸쳐 이루어진 이 공연들은 한마디로 해서 현재의 한국 연극이 갖는 노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역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와 문제점을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한다.
처음 2편은 공교롭게도 번역극이다.
뿐만 아니라 매우 현대적인 작가, 이른바 부조리연극의 계열에서는 대체로 이해하기 힘든다는 평을 받는 작품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소화하여 연극으로서 재미있도록 만드는데 두 공연은 다같이 성공했다, 그 공을 첫째로 연출의 의식적 작업에다 들리고자 하는데 연회의 존재를 의식시켜준 점만 하더라도 근래의 수작들이었다.
특히 번역극과 연출의 해석 내지 각도의 문제는 비단 현대극만이 아니라 희랍비극 세익스피어 극 같은 고전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그런 뜻에서 소박한 재래적 어프로치의 지양은 앞으로의 번역극 공연의 하나의 과제가 되어야겠다.
이 2작품 중『고도』는 작년 겨울 공연의 말하자면 재상 연인데 재상연하면서 여전히 관객동원(전 공연 만원)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레퍼터리·시스팀(자기 극단의 공연물을 정해놓고서 되풀이 상연하는 방식)의 가능성을 말해준다.
『고드』에 비해『생일파티』는 관객동원에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공연의 질은 떨어지지 않은데 왜 이런 차이가 왔느냐에 대해서는 선전 기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나 가장 큰 점은 드라머·센터 극장이 그 동안 연극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었다는 데 있다.
그 동안 드라머·센터 측에서 연극상설극장으로 환원시키기 위한 몇 가지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요는 이곳에다 관객의 발을 붙이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발이 일단 붙고 나면 이곳만큼 연극을 위한 극장도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관객 동원 성격만 두고 이야기한다면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2개의 창작극의 경우도 매우 대조적이었다. 실험극장의『허생전』은 마침 창립 1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때 도 작용했거니와 이례적으로 성황을 이루었는데 비해 자유극장의『어디서…』는 그 반대의 결과밖에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관객동원만이 공연의 성과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필자의 소견으로는『허생전』이 실험극장의 역량과 희곡·연출의 힘을 입어 그 10년간의 가장 뛰어난 성과의 하나였다는데 못지 않게『어디서…』역시 작품과 연출의 힘을 입어 자유극장의 지금까지의 최고 성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우리 연극이 안고 있는 모순이 있지 않은가. 불과 5일간의 공연으로 제작의 전 노력을 걸어야하는 방식자체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허생전』은 우리 극 계의 노장 오영진씨의 쾌 작인데 풍자와 해학을 코믹·센스로 처리하는 그의 솜씨도 솜씨려니와 고전에다 현대적 의미를 주려는 그의 작품의식은 지금 한국의 창작극이 방향을 잃고 있거나 피상성의 테두리에서 저 회하고 있는 가운데 매우 귀중한 일 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그와 매우 대조적이게도 소설가인 최인훈씨가 처음으로 시도한 희곡『어디서…』는 극을 엮어나가는 기교에 있어서 오영진씨의 것과 비교 할 때 정반대로 서툴렀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서투름으로 해서 작가 최인동씨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핵심이 더욱 부각된 결과가 되었다. 이점을 필자는 직업적 극작가 아닌 소설가(또는 시인 비평가)에게서 어떤 의미에서 전혀 새로운 희곡적 시도를 기대할 수 있는 점이라고 본다.
그는 온달설화라는 고전적 테두리를 이용하여 매우 보편성 있는(따라서 현대적이기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오영진씨와 또한 대조적이게도 비극적인 주인공을 부각하려 들었다. 한국 연극은 지금까지 자연주의적 관점에다 신파적 바탕이 결합한 기묘한 생리를 벗어날 계기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극작가들은 그것을 벗어나는데 만도 3막의 정력을 다 소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영진의 정통 희극적 작가 정신은 이미 예외에 속하고, 더더구나 최인훈 같은 국외자가 전혀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을 때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한국 연극의(특히 창작 면에 있어서의) 질적 충실을 위해 이런 국외적 접근을 적극 권유하고 싶다.
끝으로 이 작품을 성공시킨 데 끼친 연출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허생전』은 연출에서 여러 가지 전통 극 수법의 시도를 벌여보고 있다. 그것이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로 끝나버린 데 불만이 있으나 아무든 앞으로 두고두고 유의해야할 분야임은 틀림없다. 한편『어디서…』는 연출의 노력은 유난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는데 장치·의상·조명·소도구에까지 이르는 모든 면에 대한 배려며 극 전체를 깔끔하게 이끌어간 연출의 의도가 작품을 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해서 금년도 하반기의 네 작품은 금년도의 수작일 뿐 아니라 과거 어느 해에 비해 보아도 빠지지 않는 좋은 수색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수준을 어떻게 앞으로도 밀고 나갈 것이며 여기 드러난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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