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살빼기에서 극적으로 승리하는 방법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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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살면서 내 맘대로 되는 일이 몇이나 있으랴만 그중에서도 정말 내 맘대로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체중관리다. 요 며칠, 만나는 사람마다 들었던 말이 긴 추석연휴에 불어난 살에 대한 푸념이었다. 연휴의 끝은 이렇게 살빼기 과제만 남긴다. 나도 불어난 살 빼기 전쟁에 돌입했다. 내 기본 전술은 병법 36계 중 1계인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넌다는 기만전술이다. 속일 대상은 나의 뇌다. 탄수화물과 지방은 빼고, 단백질과 비타민 중심으로 먹고, 그러다 때로 고칼로리에 기름진 음식도 한번씩 먹어 평소처럼 먹는 척하는 거다. 그럼 극적이진 않아도 표준체중 근방에서 간당간당 유지는 된다. 결함은 누군가 속이려면 나도 늘 긴장해야 한다는 것.

 다이어트 시작부터 연휴 동안 먹어 왔던 뒤끝인지 빨리 찾아오는 허기에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서늘한 뉴스가 들렸다. 1년9개월 동안 131㎏에서 56㎏까지 75㎏ 이상을 뺐다는 23세 여성의 갑작스러운 사망. 그녀는 한 케이블TV에 나와 각종 시술과 기법을 동원해 살을 뺀 의지의 한국인 중 한 명이란다. 사인으로는 무리한 살빼기의 부작용이 거론된다. 요즘 시중엔 위밴드 수술, 지방흡입술, 식욕억제제 등 살을 직접 공략하는 과격한 살빼기 기법들이 많다. TV에선 뚱뚱한 사람들을 끌어내 살로 인해 우울한 현실을 보여주고, 여러 기법과 시술을 통해 단기간에 살을 빼면서 점차 아름다워지는 모습을 연출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아름다워지면 행복해진다는 ‘신화’를 퍼뜨리면서.

 이런 다이어트를 전술로 치자면 34계 ‘고육계(苦肉計)’쯤 될 것 같다. 자기 몸을 해쳐 비만을 공략하는 게 자해 수단을 써서 적진에 침투하는 고육계와 닮아서다. 극단적이지만 성공하면 극적인 승리를 이룰 수 있어 매혹적인 전술이긴 하다. 한데 고육계의 함정은 실행당사자에겐 위험하고 승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고육계를 쓴 오나라 자객 요리(要離)는 합려(闔閭)를 위해 오왕 요(僚)를 살해한 뒤 자신은 죽임을 당했다. 물론 합려는 왕이 됐지만.

 요즘처럼 먹어서 건강을 해치는 시대에 비만관리는 건강을 위한 필생의 과제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건강한 살빼기는 살과 ‘밀당’을 하며 줄타기를 하는 거다. 한데 최근엔 허핑턴포스트가 체중이 적게 나가야 오래 산다는 이론을 뒤집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50대 이상은 표준체중보다 꾸준하게 더 나가는 사람이 오래 살더라는 것이다. 이 보도에 괜히 마음이 푸근해졌다. 적당히 살집 있는 사람이 마음도 넉넉하고 행복하다며 자위하는 한편으로 날씬하고 예쁜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니 기쁘기도 해서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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