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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떴다 떴다 비행기'도 모차르트 미뉴에트도 똑같이 아름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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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시험 본다는데 긴장되지 않을 리 없다. 그나마 엄마가 곁에 있어 다행이다. 오디션에 맞게 검정 정장에 흰색 드레스셔츠로 멋을 냈다. 플루트를 잡고 연주하려는 순간 심사위원 한 분이 급히 손짓하며 속삭였다. “거꾸로 잡았어, 거꾸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는데 엄마가 플루트를 반대 방향으로 고쳐 잡게 해주었다. 당황했다. 구멍에 숨을 불어넣었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더 움츠러들었다. 심사위원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격려한다. “다른 곡 해볼까?” “비행기 할까? 자전거? 나비야 나비야?”

 어제 수원시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특별한 오디션이 열렸다. 10월 15일 출범하는 국내 최초의 장애아동·청소년 전문 오케스트라 ‘헬로 셈(Hello! SEM)’의 단원 모집을 위한 공개 심사. SEM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음악가(Special Excellent Musician)’를 뜻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교 2학년 사이의 지적·자폐성·지체·시각 장애인이 대상이다. 모집 공고가 나자 128명이 지원했다. 서류 심사로 80명으로 압축했고, 이들이 어제 오디션을 보았다.

 한 명당 5분 안팎. 준비한 악기로 두 곡을 연주하고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한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부모가 대신했다. 피아노·플루트·클라리넷…. 대개 ‘징글벨’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비행기’ ‘미루나무’ 같은 동요를 택했지만, 몇몇은 영화 ‘스팅’ 주제곡(더 엔터테이너), 모차르트의 미뉴에트, 비제의 ‘아를의 여인’ 중 미뉴에트를 멋들어지게 연주했다. 웨스트라이프의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을 플루트로 연주한 고2 남학생의 모친은 “아이의 진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할 수 있는 게 음악밖에 없어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클라리넷으로 ‘더 엔터테이너’를 연주한 학생의 어머니는 “악기 레슨이 아이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줄까 봐 망설이다 너무나 즐거워하길래 시키게 됐다”고 했다.

 행사를 주관한 ‘에이블아트(Able art)’의 대표 장병용(55) 목사는 1987년 전도사 시절에 친구이던 지체장애 화가가 ‘너무나 힘든 세상. 아무리 발버둥쳐도 꺾이기만 할 뿐’이란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한 데 충격 받아 장애인 문화예술 후원사업에 뛰어든 이다. 헬로 셈 창단은 그에게 또 다른 출발이다. 무대 앞자리에서 오디션을 지켜보자니 시커멓게 타버린 장애아 부모들의 마음이 전해졌다. “사회의 편견이 가장 힘들었다”는 한 어머니의 말. 더 많은 비장애인이 오디션 장면을 보았어야 했다. 어느 쪽이 더 큰 장애인지 반성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유 레이즈 미 업’의 가사 한 구절을 떠올렸다.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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