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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극단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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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인훈작『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자유극장」제16회 공연)가 연극「팬」들의 기대를 안고 지난 l8일 막을 열었다. 그 기대는 우리나라의 중견작가인 최인훈씨의 첫 희곡이란 점과, 최근 구미 연극계를 돌아보고 귀국한 김정옥씨의 연출이란 점이었다. 최인훈씨의 희극은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훌륭한 작품이었고, 김정옥씨의 연출 역시 구태의연한 한국 연극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역력히 드러났다. 연기진도 시종 진지하고 열성있게 무대를 이끌어갔다.
바보 온달의 사화 - 즉 온달의 꿈, 평강공주와의 결혼, 입신, 죽음 등으로 짜인 이 작품은 인간의 욕망이나 그 역사가 현재적인「만남」이나「되어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초 인간적인 어떤 윈초적 설계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아나 집착을 버리고 교의에 귀의해야한다는 불교적 세계관이 충만한 작품이다.『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아름다운 연극이었다. 강치(최연호), 의상(이병복), 조명(이우영) 모두가 아름다운「이미지」로 통일되고 조화되었다.
작품은 연극적이 아니라 문학적이었다. 시와 철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연극은 언어의 요술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행위의 예술이다. 예컨대 온달의 성격은 그가 하늘같이 조국처럼 받든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 왕에 대한 그의 충성, 조신들에 대한 처신 등 온달의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나타나야 하는 것이 연극적이다.
설화 아닌 행위에 의한 성격화 대신 최인훈씨는 온달의 긴 독백(이라기보다 보고) 하나로 처리하고있다. 하나의 온전한 인생, 온전한 인간의 경험은 시나 설화보다 더 큰 감명을 준다. 이러한 방법이 원초적인「만남」의 실체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영롱한「이미지」를 지닌 언어를 구사하여 아름답고 섬세한 세계를 펼쳤다. 넘치는 생명감이나 생동의 기쁨을 맛불 수는 없었으나 알알이 영근, 차가운 예지와 인간에의 통찰을 경험할 수 있었다.
김자경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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