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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업화·합법화·슬림화·국제커넥션에 느림보 법적대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1년 9월 4일 러시아 마피아 8명이 마약을 밀매하려다 부산경찰청 수사대에 체포됐다. 박건찬 경정은 “한국은 일본·중국·러시아와 지리적으로 밀접해 있기 때문에 국제적 조직범죄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사카의 한 야쿠자 조직이 한국에 조직사무소를 개설하기 위해 용지를 확보하려 했던 사실이 ‘아사히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경찰은 일본 야쿠자가 국내 조폭 조직들의 자금원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는 특히 일본 야쿠자 조직내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야쿠자들이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사법기관의 단속으로 야쿠자 조직이 위축되자 한국을 새로운 활동무대로 삼게 되었다는 게 한국 경찰의 분석이다. 국내조직도 미국·일본·중국·필리핀·태국·베트남 등지로 진출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조폭이 기업화·합법화·슬림화를 꾀하면서 국제적 연계를 도모하는 대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정작 경찰의 대응은 그에 못미친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여기에는 법적·제도적 한계가 있다.

한 강력계 형사는 이렇게 말한다. “조폭수사를 위해서는 외국처럼 잠입수사·함정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수사를 통해 얻은 증거는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전담수사체계나 전담 수사관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검사들은 강력부 검사로 부임해 임기만 채우고 나가면 그만이다. 뿌리는 그대로 있고 실적만 채우는 것이다.”

일본은 1990년 야쿠자 조직간의 분쟁으로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1992년 ‘폭력단대책법’을 제정해 지정 폭력단 제도를 운영하면서 야쿠자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에도 범죄조직의 자금원을 차단하고 마피아를 뿌리뽑기 위해 리코법(Rocketeer Influenced and Corrupt Organization Act)을 시행하고 있다. 조폭의 뿌리를 뽑는 근본적 방법은 자금원을 차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2001년 9월 ‘범죄수익규제법’이 제정되어 자금원을 색출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박건찬 경정은 “조폭의 근절은 人·物·金 세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제 조폭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도 아니고 조직내의 규율도 아닌 돈이다. 자금추적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 이제 몇명 잡아 무슨파라는 이름을 붙여 감옥에 넣으면 끝나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범죄자는 언제나 한발 앞서 나가고 공권력은 그만큼 느린 게 우리의 현실이다.

[출처=뉴스위크 549호/ 김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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