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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잔혹 스토리가 난무하는 우리네 명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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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얼굴못본 니네조상/ 음식까지 내가하리/ 나자랄때 니집에서/ 보태준거 하나있나/ 며느린가 일꾼인가/ 이럴려고 시집왔나…’.

 추석 전에 후배가 보내준 ‘며느리 넋두리’라는 시다. 작자미상이지만 명절 즈음에 젊은 며느리들 사이에서 꽤 공감을 얻는 시란다. 그러더니 추석 연휴 동안엔 한 장의 젊은 며느리 인증샷이 SNS와 인터넷을 발칵 뒤집었다. 차려진 제사상 앞에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는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손가락 욕을 날리고 있는 젊은 여성의 사진. 이에 어이없다거나 분노하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합성사진일 거라며 변호하는 반응과 ‘속이 시원하다’며 옹호하는 반응도 있었다.

 내 경우는 이 시와 사진을 본 순간 눈살이 확 찌푸려지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람은 입장에 따라 관점도 바뀌는 터라 성년이 된 자식이 있다 보니 며느리보다 시어머니 입장에 더 감정이입이 됐기 때문일 거다. 하나 내 감정이야 어떻든 이 같은 명절의 ‘잔혹스토리’는 실제 상황이다. 이미 ‘명절’이라는 말은 즐거움·풍족함·가족애와 같은 단어가 아니라 명절증후군·스트레스·우울증·이혼 등의 용어와 섞이기 시작했다. 실제 통계상으로도 지난 5년간 명절 직후의 이혼 건수가 직전 달보다 12% 증가했단다. 시장은 명절 제수 상품만큼이나 명절증후군을 공략하는 상품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명절 한 번 쇠고 나면,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도 돈을 써야 할 지경이 됐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아마 가족이 변해서일 거다. 이 시대 가족은 가부장제가 무너지고, 시집의 우위는 희박해지고, 부부는 평등을 지향한다. 여성들은 자기 부부 중심의 핵가족 문제에 간섭하는 시집 식구들을 ‘시월드’라는 말로 경멸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가족 관계와 개념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하고 있는데, 명절만 되면 그 변화를 역행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평소에 잊고 지냈던 조상 숭배와 효도·우애의 코스프레가 강요되고, 가부장적 복고주의가 고개를 들며 가족 간 긴장감을 높이니 명절이 ‘잔혹한 날’이 된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효제인지본여(孝悌仁之本與 : 효도와 우애는 사람됨의 기본이다), 효(孝)가 인간 본연의 심상이라던 공자(孔子)의 말씀이 시효를 다했다고 믿진 않는다. 다만 효제(孝悌)가 현대 가족에 맞는 방식을 찾지 못해 길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여성과 아랫사람들의 순종과 희생으로 영위됐던 효제의 방식은 작금의 시대정신을 배반하는 것이어서 저항에 부닥쳤다는 것이다. 이젠 기존 가족관계에 대한 개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가족애의 방식을 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족은 뭉쳐진 게 아니라 각각 독립적이고 평등한 인격체들의 연대 같은 거라는….

양선희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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