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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 별세 79세 심장마비로 10일 상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파리에서 장덕상 특파원】『20세기의 영웅』이며『「프랑스」의 영광』인 전「프랑스」대통령「샤롤·드골」장군이 9일 하오7시30분(한국시간 10일 상오3시30분)그의 향리인「콜롱베·레·되제글리즈」의 자택에서 심장마비의 일종인 동맥 류 파열로 급사했다. 향년79세. <관계기사 2·3면에>

<부인요청으로 14시간 뒤 발표>
11윌22일이면 80회 생일을 맞을 예정이던「드골」장군은 이날 부인「이븐」여사와 함께 거실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TV를 보던 중 갑자기 졸도,「이본」여사가 의사와 신부를 모셔 왔으나 이미 사경에 접어들었다.
「드골」장군의 서거는 10일 상오4시(한국시간 10일 정오)까지도「파리」에 보고되지 않다가 고인의 사위인「알렝·드·봐시의」장군이 「조르지·퐁피두」대통령에게 전화로 전함으로써 알려졌다.「퐁피두」대통령은 이날 아침「텔리비젼」이 방송을 통해『「드골」장군이 가셨다. 이제「프랑스」는 미망인이 되었다』고 「드골」장군의 죽음을 공표 했다. 이날 긴급히 열린「프랑스」각 의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콜룽베」에서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하지 않고 간소하게 하되 외교사절 및「프랑스」인사들을 위해「콜룽베」장례식과는 별도로12일 상오11시(한국시간 하오7시)「파리」시내의「노테르담」사원에서 종교의식에 의한 장례식을 갖기로 결정했다. 각 의는 또한 고인의 장례일인 12일을 국상 일로 선포했다.
69년 4월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드골」장군은 향리인「콜룽베」에서 은거하면서 그가 생전에 소망하던 데로 회고록의 집필을 시작, 1년 만인 지난달「메뫄르·데·스포아르」(희망의 회고록)3권 중 첫 권『회생』을 발간했으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제2권 집필에 여념이 없었다.
【쿨룽베·레·되제글리즈10일 AP동화】「드골」전 대통령이 지난9일 밤에 별세했으나 사망 소식은 14시간 뒤에야 공표 되었다.
「드골」자택에 부름을 받은 마을신부「클로드·조제이」씨는「드골」여사로부터「드골」전 대통령의 죽음을 알리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드골」여사는 조용히 이 사실을 정부당국에 통고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장례에 관한 유언>
「드골」장군. 1952년1월16일 씀. 나의 장례식은「콜룽베·레·되제글리즈」에서 거행되었으면 한다. 또한 나의 시신은 내 고향으로 운구 되면 좋겠다. 간소하더라도 공개적인 행사는 원치 않는다. 내 무덤은 내 딸「안」이 묻혀있는 곳에 마련되어야 한다. 언젠가는 나의 아내도 묻힐 곳이다. 내 장례식은 나의 아들·딸·사위·며느리가 나의 비서와 함께 준비할 것이다. 나는 국민장을 결코 원치 않으며 장례식은 간소할수록 좋다. 대통령·각료 또는 정부기관 대표들이 참석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프랑스」의 각 군이 공식적으로 참석하는 것 은 좋을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참석도「밴드」「팡파르」등이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회에서 설교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의회에서 장례 연설이 있어서도 안 된다. 나의 가족, 친구.「콜룽베」시의회를 위한 좌석만이 준비될 것이다.「프랑스」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나를 위해 추념 식을 가진다면 되도록 조용하게 했으면 한다. 그리고「프랑스」나 미국에서 나를 위한 공훈인정. 승진, 포상. 훈장수여 등은 거부함을 미리 밝힌다. 그러한 것들을 수여하는 것은 나의 마지막 소망을 깨뜨리는 것이 될 것이다.「드골」』【파리=장덕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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