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2만5000개, 박물관 구경오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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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전시품을 설명하는 이경순 대표. 그가 착용한 액세서리도 넥타이로 만든 것들이다.

200년 넘은 앤틱 가구에 100살 먹은 넥타이들이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서울 성북동 30-1번지. 패션 브랜드 누브티스 이경순(56) 대표가 넥타이 박물관을 열었다. 레스토랑과 합쳐진 형태다. 254평(839㎡) 부지의 이 박물관에 전시된 넥타이는 2만5000개가 넘는다. 이 대표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넥타이로 만든 의자·목걸이 등 이색적인 전시품들은 물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넥타이를 갖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넥타이 공방(工房)’도 만들었다. 이경순 대표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태극과 팔괘를 응용한 ‘히딩크 넥타이’로 유명해진 디자이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 맸던 ‘독도 넥타이’도 그의 작품이다. 17일 박물관이 위치한 성북동에서 그를 만났다.

 - 어떻게 2만5000개나 되는 넥타이를 모았나.

 “수십년 동안 외국 나갈 때마다 틈틈이 사모은 것들이다. 가구들도 마찬가지다. 발품을 팔아 구입한 뒤 직접 포장해 컨테이너로 운반한 가구들이 대부분이다. 집에서 보관하던 걸 박물관으로 빼왔다.”

 - 갑자기 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왜 하게 됐나.

 “어느 날 문득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하니 내가 모은 것들을 집에만 놔둘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감상할 수 있게 집대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마음의 결정을 하고나선 금방이었다. 땅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데 5분 걸렸다. 부지 구입부터 박물관 개장까지 1개월 보름 걸리더라. 인테리어는 내가 직접 했다.”

 - 땅값도 만만찮았을 것 같다.

 “성북동 고가 주택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지인이나 손님들이 땅값 얘기를 종종 하신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얘기 들으면 속이 좀 상한다. 땅값 못지 않게 여기 전시된 물건들이 가치가 있다. 100년이 넘은 앤틱 타이틀 중에는 500만~6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것들도 있다. 넥타이 값을 다 합하면 70억원이 넘을 거다. 가구도 12억원어치는 된다. 그러나 돈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전시된 물건들은 내가 스무 살 때부터 하나둘 모은 것들이다. 나에겐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 앞으로 박물관은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가.

 “동네 주민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운영할 거다. 주변 사람이 행복해야 박물관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엔 근처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두 분이 식사할 곳이 없다고 하셔서 브런치 메뉴도 만들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수익을 낼 생각은 없어서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관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넥타이를 기증하려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도 생겼다. 대기업 회장님도 있지만 근처 복덕방 할아버지들도 찾아온다. 너무 감사해서 커피 한 잔이라도 꼭 대접한다.”

 이 대표는 인근에 대사관 관저가 많은 걸 활용해 성북구(구청장 김영배)와 함께 10월 18일 ‘대사관의 날’ 행사도 준비 중이다. 박물관 벽에 각국 대사관에서 기증받은 작품을 판매해 수익 전액을 독거노인을 돕는 데 쓸 계획이란다.

글·사진=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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