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vs 스텔스 차세대 전투기 … 운명의 화요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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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차세대 전투기(F-X)의 운명이 24일 결정된다. 8조3000억원을 들여 전투기 60대를 새로 구입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백윤형 방위사업청 대변인은 17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주관하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를 24일 열기로 했다”며 “이 자리에서 F-X 기종을 결정하거나 사업을 연기하는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조 더 들이면 스텔스기 갖는다”

 지난 7월부터 실시한 입찰에서 유일하게 예산범위 안에 들어와 사실상 단일 후보가 된 기종은 보잉의 F-15SE(사일런트 이글). 지난해 1월 방사청이 사업계획을 발표한 이후 F-15SE(보잉), F-35A(록히드마틴·이상 미국), 유로파이터 타이푼(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등 3개 기종을 대상으로 성능, 가격, 전투기 도입 대가로 우리나라에 제공하는 절충교역 등을 놓고 평가를 진행해왔다. 여러 요소를 평가한 결과 F-15SE가 최종 승자로 굳혀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스텔스 기능이 막판 변수로 등장했다. 스텔스는 동체 재질, 특수 페인트 등을 사용해 레이더파의 반사를 최소화해 발각 가능성을 줄이는 기술이다. F-15SE는 부분적(비행기 앞쪽면)으로만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다.

“스텔스 잡는 레이더 나오면 무용”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뿐 아니라 헬기·함정 등 최신 장비들에도 스텔스 기능을 적용하고 있는 추세다. F-X 기종은 스텔스가 필수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역대 공군참모총장 15명이 지난 12일 “스텔스 전투기는 은밀한 침투가 가능해 적에게는 심리적인 압박과 공포를 안겨줄 수 있어 가공할 억제력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성명을 내고 정부를 압박했다. 유사시 세계 최고 수준의 방공망으로 평가받고 있는 북한에 침투하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창’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생전, 스텔스기인 F-22가 한반도에 투입되면 외부 활동을 중단하곤 했다. 또 중국이나 일본이 스텔스기로 무장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도 이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반면 스텔스가 만능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공군 관계자는 “현재까지 개발된 스텔스기 가운데 RCS(적의 레이더에 탐지되는 면적)가 0인 항공기는 없다”며 “일반항공기에 비해 작은 점으로 나타나거나 레이더 출력을 높이면 잡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스텔스 기능이 있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모습을 감출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너무 스텔스 기능에 집착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군이 운용하고 있는 F-22나 B-2 등 스텔스기들이 실전에서 스텔스 기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 미국이 자랑하던 F-117 스텔스 폭격기가 1999년 세르비아에서 격추당한 사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나 일본이 개발 중인 스텔스 잡는 레이더가 나오면 효용성은 줄어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군 “시간 없다, 아무거나 사달라”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일부에선 한 해 1000억~2000억을 10년간 더 투자하면 스텔스기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며 “스텔스기가 일반 전투기에 비해 효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조원 가까운 돈을 추가로 부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전쟁 초기 미사일이나 미군 스텔스기로 방공망을 무력화한 뒤 보다 많은 무기를 달고 공격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며 “스텔스뿐만 아니라 레이더 성능 등 전체적인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록히드마틴의 F-35A(APG-81) 등 보다 최신형(APG-82) 레이더를 더 많이 탑재하고 있는 보잉의 F-15SE가 실전에서 더 효율적이란 얘기다.

 백 대변인은 “방추위에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성능평가 작업을 벌였던 세 가지 기종에 대한 종합평가 점수를 보고하고 의견이 엇갈릴 경우 투표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24명의 방추위원 가운데 외부 연구기관 관계자 등 5명을 제외하고 19명이 투표를 하게 된다.

 그러나 24일에도 기종 선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원점 재검토로 결정될 경우 전력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공군은 늦어도 2017년 후반기부터는 차세대 전투기 1호기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성일환 공군참모총장은 지난해 7월 “아무거나 사달라”고 한 적도 있다. 전력 공백을 우려한 발언이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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