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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왕 전하의 추억>

<이동 역씨 담>=내가 중앙 유년학교생도 시대의 이야기인데 바로 학교 뒤에는 황족사가 있어서 이왕 전하는 매일 그 곳에 기숙하고 계시었다. 장난꾸러기 생도들은 저녁만 먹고 나면 황족사 뒤로 돌아가서 『전하! 전하!』하고 가만히 부를라치면 어느 틈에 2층 틀 창문이 열리면서 과자며 귤(밀감) 같은 것을 던져 주시었다. 교내에서는 간식을 못하는 우리들을 동정해서 주신 것이었으리라. 고맙게 잘 먹었으나 참으로 황공한 일이었다.

<토거명부씨 담>=대정 3년(1913)이왕 전하는 유년학교에서 나와 한반이었다. 키는 크지 않으시나 몸집이 뚱뚱하셔서 유도는 누워서하는데 장기가 있으셨다. 그리하여 나하고 시합을 할 때에는 위로 가든지 아래로 가든지 전하의 부드러운 육체의 감촉이 언제까지나 잊을 수가 없었다.
어느 겨울날 밤 기숙사에서 저녁을 먹은 뒤에 스기모리(삼삼)군과 둘이서 전하께 사과를 좀 줍시사고 떼를 썼더니 곧 갖다 주시었다. 지금은 사과가 흔하지만 50년 전인 당시는 귀중한 과실로 우리들 평민들은 여간해서는 맛볼 수가 없는 것으로 우리들은 소나무 밑으로 가서 기꺼이 그것을 다 먹고 말았다.
그랬더니 그 이튿날 구대장이 황족사의 식당에 있던 사과가 두 개 없어져서 큰 소동이 일어났는데 누구 아는 사람은 없느냐고 야단을 치므로 스기모리군과 나는 할 일없이<우리들이 먹었읍니다>고 자백하였다. 전하에 관련된 일이므로 중영창 1주일쯤은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그후 구대장으로부터 이왕 전하가 <사과는 내가 준 것이니 그들은 용서해 주라>고 하시므로 그 고마우신 마음씨를 생각해서 이번 일은 특히 불문에 붙이는 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 주의가 있었다. 즉 전하가 우리들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쓴 것이다. 그러므로 이왕 전하는 벌써 어려서부터 통령왕자의 풍격을 가지고 계셨다고 할 수 있다.

<정야팔낭씨 담>=나는 유년학교 제14기 생으로 오랫동안 전하와 행동을 같이 하였다.
이왕 전하는 언제 어떤 장소에서고 항상 봄바람과 같은 부드러운 풍격으로 고귀한 향기가 전신에서 발산되는 듯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서민가운데로 들어오시면 극히 자연스럽게 융화가 되시며 그러면서도 중심적 역할을 언제나 전하가 하시었다.
여기서 하나 향기롭지 못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겠는데 그것은 내가 유년학교 예과시절 전하와 유도시합을 할 때의 이야기다.
이왕 전하는 키는 작은 편이었으나 폭은 당당한 위장부로서 나는 그만 바닥에 누운 채 전하에게 깔려서 꼼짝없이 지게 되었었다. 나는 상대가 아무리 전하라고 하더라도 승부에는 결코 사양하지 않으므로 전신의 힘을 모아서 나를 깔고 앉으신 전하를 넘어뜨리려고 배에 더욱 힘을 주었더니 그 찰나에 큰소리와 함께 추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시 말할 것도 없이 방비를 한 것인데 마음속으로는 아주 황공하게 생각하면서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더욱 투지를 내었는데 아래에 누운 채 가만히 위를 쳐다보니 그렇게 악취가 심한데도 전하는 그런 일은 전연 모른다는 듯이 꼼짝도 하지를 않으셔서 나는 필경 지고야 말았다.
아주 더러운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고 또 실례인줄은 알지만 이왕 전하는 일상생활은 극히 평범하고 또 아주 원만하게 보이는 어른이었지만 어떤 일에 처하여서는 꼼짝도 하지 않으시는 외유내강한 성격이었으며 인간으로서 최고의 풍격을 구비한 동시에 장수로서도 뛰어난 국량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전기 추잡한 에피소드로도 잘 알 수가 있을 줄 안다.
이왕 전하께서는 이미 잊어버리신지 오래이고 또 지금은 유명을 달리 하였으므로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도 없겠으나 나에게 있어서는 전하에 대한 존경과 친근의 감회와 함께 영원히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이 되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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