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간과 컴퓨터와의 대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언젠가는 인간이 컴퓨터의 노예가 될지 모른다고 내다본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SF(공상과학소설)에서나 그런 일이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컴퓨터로 침팬지의 뇌파를 조종하여 관능을 제어하는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언젠가는 인간이 컴퓨터의 노예가 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실험자는 『감각을 빼고서의 뇌와 컴퓨터의 대화』라고 그 실험에 대해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뇌와 컴퓨터는 어떻게 대화를 했다는 것일까.
예일 대학의학부의 호세·델가도 박사(55)를 중심으로 하는 신경의학팀은 우선 침팬지의 뇌의 각부에 1백개의 전선을 연결하여 뇌파를 검출했다. 이어서 검출된 뇌파를 뇌 속에 매몰시킨 조그마한 FM 송수신기의 송신기에 의해 무선(초단파)으로 컴퓨터에 연락되게 했다. 그 다음엔 컴퓨터는 그 뇌파를 분석하여 그에 대응한 지속시간의 전파를 뇌에 보내게 했다. 그 전파를 수신기에 의해 전환해 가지고 다시 뇌의 각 부분을 자극하도록 했다. 패디라는 침팬지를 써서 실시된 이 실험의 결과로 컴퓨터에서 돌려보낸 전파의 자극으로 처음 검출됐던 뇌파의 발생이 억제되기에 이르렀고 2시간 뒤엔 그 원래의 전파가 발생마저 멈췄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실험의 골자는 무엇일까. 그것은 뇌의 일부가 내는 신호 또는 명령을 신경을 거치지 않고 컴퓨터의 중계로 뇌의 다른 부분에 전달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전선을 측정기구에 연결한 실험은 있었으나 무선으로 해본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 델가도 박사는 1년 이내에 이 실험이 임상에 쓰일 것이라고 장담했다고 한다. 먼저 간질치료에 쓰일 가능성이 짙다. 간질이 발작할 때 그 뇌파를 컴퓨터가 분석해서 억제하는 전파를 줄 수가 있다. 다음에 이런 방법으로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병과 기타 각종 정신병을 제어할 수가 있다.
그뿐 아니라 통각도 완화시킬 수 있고 장님이나 귀머거리의 시력과 청각도 자극시킬 수 있다. 응용이 여기서 그치면 문제는 없다. 원수폭에 평화와 전쟁의 양면이 있듯이 이 실험엔 임상적인 밝은 전망과 함께 인간을 컴퓨터의 노예가 되게 할 어두운 전망을 내포하고 있다. 컴퓨터의 힘으로 어떤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명령을 내릴 수가 있고 다른 사람의 속마음과 사고과정을 명백하게 들여다볼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을 세뇌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 같은 것은 신기는 스럽지만 유쾌한 전망은 못된다.
더 나아가서 어떤 독재자가 모든 인간을 컴퓨터를 통해 버튼 하나로 지배한다면, 아니 고도의 지능지수를 가진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를 동원해서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델가도 박사는 응용범위가 의학적인 면에 한정돼 있다고 보고 있지만 기억량 처리속도 등이 비약적으로 커지는 컴퓨터의 하드·웨어(기체)와 다양해지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용법)를 생각할 때 장래의 정보사회를 낙관만은 못할 것 같다. <이종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