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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무현 정부의 시대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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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오늘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의 영광스러운 취임식 앞에 기다리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쉽게 처리되고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의 운명과 직결된 북핵사태와 한.미동맹 관계의 조정 등이 바로 코 앞의 일로 닥치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3金시대로 대표된 지역적 정치세력권의 타파와 부패구조의 청산, 분권화 등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기업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지속적인 성장과 분배의 조화라는 과제를, 사회적으로는 동서지역간 및 좌우이념간, 그리고 세대간 갈등의 치유라는 과제를 안고 출범한다. 이 많은 과제들을 사안의 경중 및 완급을 가려 신중하고 사려깊게 '개혁과 통합'을 이끌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시대적으로는 이승만의 건국시대,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군정적(軍政的) 산업화 시대, 김영삼.김대중의 민주화시대를 마감하고 21세기 한민족의 진로에 대한 기틀을 설정하고 그 명운을 개척해야 할 소명을 안고 출발한다.

한마디로 시대적 전환기를 이끌 책무를 띠었다. 새 정부는 따라서 군정과 3金시대로 대표되는 부정적 유산을 바로 잡고,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세워 나가야 한다.

적폐의 시정과 새 기틀의 확립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盧정부는 국가체제의 영속성을 고려하면서 세계적 잣대에 맞는 실사구시적 자세로 국가적 과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과거의 잘못은 당연히 청산돼야 한다. 바른 방향의 개혁은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 그 전제는 국민이 수긍하고 지지할 수 있는 방법이 동원되고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개혁은 국민이 동참할 때 성공의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국민의 동참을 이끌어내려면 대통령과 그 막료들이 절대권력에 대한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명령조나 지시형 개혁과 호령으로는 변화와 개혁을 이룰 수 없다.

두 金씨들의 전임 정부가 '도덕적 우월성'에 우쭐해 일방적 개혁을 밀어붙이다가 반대세력만 양산했던 전철을 새 정부는 밟아서는 안된다. 지금은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 더구나 5년단임의 한시적 정부다. 그 짧은 기간에 광풍을 휘몰며 일거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심은 금물이다.

김대중 정권의 '제2건국'은 이 같은 헛된 야심 때문에 결국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그보다는 21세기 민족사의 진로를 내실있게 다진다는, 겸허하고 정직한 자세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행히 盧대통령은 권력분산을 약속했고, 초당적 협력하에 국민과 함께 하는 개혁을 공언했다. 그의 이런 초심은 끝까지 유지돼야 한다.

盧대통령은 대내외적 통합이란 중차대한 난제에 맞닥뜨리고 있다. 북핵사태, 그와 공교롭게 맞물린 한.미관계의 재정립은 국민적 지혜와 지지를 모아야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한.미동맹의 약화는 우리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것인 만큼 미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지역감정, 세대간 부조화도 문제다. 특히 사회 중추세력의 교체와 연관된 이념적 갈등조짐은 盧대통령이 우선적으로 치유해야 할 대목이다. 盧대통령은 청와대와 새 정부 일부의 내정된 진용이 이념적 지향성이 있다는 일부의 우려도 경청해야 한다.

이런 난제에 바로 부딪혀야 할 盧대통령에게 국민과 사회 각 세력은 협력과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와 새 정부가 국민의 지지 속에 개혁과 통합을 이끌 수 있는 바른 방향을 세워 점진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야 새 정부가 구호로 내세운 '참여정부'가 실체화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