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법 개정안 '원점 재검토' 각오로 다시 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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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13년 세법 개정안의 큰 줄기는 잘 알려진 대로 고소득자가 더 많이 세금 혜택을 보는 소득공제 방식을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방향은 맞았지만 국민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부족해 ‘유리지갑 털기’란 비난과 함께 여론의 뭇매를 맞고 만신창이가 됐다. 발표 4일 만에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발언이 나왔고, 바로 다음날 개정안의 핵심이었던 세금 부담 기준선을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2000만원 넘게 끌어올려야 했다.

 정기국회가 열리면서 세법 개정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개정안은 다음달 예산안과 함께 국회의 본격 심사에 들어간다. 이에 맞춰 각계의 수정 의견과 주문도 쏟아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남은 시간 동안 이런 주문들을 꼼꼼히 따져 개정안에 반영할 것은 하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할 것이다. 정부로선 대통령 지시에 따라 하는 하루짜리 벼락치기 말고 진짜 ‘원점 재검토’안을 만들 기회이기도 하다. 마침 어제 국회 예산정책처와 국가미래연구원, 한국납세자연합회·하나은행 3곳에서 세법 개정안의 문제와 개선책을 각각 내놓았는데 참조할 만하다.

 예산정책처는 비과세·감면에 대한 정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법인세 비과세·감면만 잘 정비해도 앞으로 4년간 10조50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 위해 올해와 내년 일몰이 다가오는 20개 주요 비과세·감면 조항 중 17개의 폐지 또는 축소가 필요하다고 봤다. 정부는 애초 이번 개정안을 만들 때 비과세·감면을 충분히 정비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회의 지적이 나온 만큼 재검토 여지가 없는지 더 따져보기 바란다.

 예산정책처는 또 의료·교육비는 원래대로 소득공제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득공제는 기업의 비용처럼 필요 경비를 인정해주는 제도인 만큼 의료·교육비는 가계의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납세자연합회·하나은행 분석 결과 전면적인 세액공제 방식은 수억원대의 고액 연봉자보다 7000만~8000만원 연봉자의 세금 증가 폭을 더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세금 역진’ 구간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조율도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국가미래연구원은 소득 구간별로 다른 근로소득 세액공제 금액을 65만원으로 통일하되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해 과세표준 8800만원 이상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3%포인트 더 올리자고 제안했다. 야당의 부자 증세 주장과 맞물려 논의해볼 제안이다. 또 세액공제 방식이 이제 싹을 틔우기 시작한 기부문화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애초 모두가 만족하는 세금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최대공약수를 찾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여야가 머리가 터지도록 맞대고 논의하기 바란다. 그게 민생 국회요, 납세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