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계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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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신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며칠 사이에 연탄 개스 중독사고가 잇달아 일어났다. 일가족이 온통 생명을 잃은 비참한 경우도 있었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똑같은 사고가 반복된다. 근년엔 개스 중독에 의한 사망자가 전국적으로 연간 1천명이 넘고 있다. 서울에서만도 4백명이 넘는다.
이른바 무독화학탄은 당국에 의해 여러번 시도되었다. 그러나 모두 허무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화학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민의 생활조건에 맞느냐 안 맞느냐가 문제다. 생활조건이란 우선 그 값이 받아들일만한 정도인가를 말한다. 연탄 값이 불과2, 3원만 올라도 서민의 비명이 요란하다 이런 현실만 보아도 곧 그것이 우리의 가계와 얼마나 민감한 관계가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비록 값이 저렴해도 그 다음엔 내열성이 얼마나 강한 가도 문제이다. 일본의 가정에서 요즘 쓰고 있는 백탄(화학탄)의 경우는 무독은 보장되지만, 그 열도가 얼마나 지탱되는가엔 묘수가 없다. 불과 2, 3시간이면 사위어 버린다. 결국은 단가보다도 1일 단위의 코스트가 높으면 이것 역시 생활조건에 맞지 않는 셈이다.
최근 우리 나라의 기술진에서 굴뚝의 개조에 관한 연구에 열의를 올리고 있다. 굴뚝의 높이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을 두 개로 만들면 어떠냐하는 아이디어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가옥구조를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형편이 고르게 되어 있지 않을 때엔 무력해지고 만다.
사실 연탄 개스 중독은 서민 이하의 계층에서 주로 볼 수 있다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굴뚝을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는 정도의 가정에선 이것 말고도 안전책을 이미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의학박사들이 모인 개스 중독에 관한 좌담회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방책으로 결론이 맺어진 일이 있었다. 모두 실책을 금치 못했지만 그 이상의 묘책은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했다. 도배를 철저히 하는 국민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판잣집들이 많은 지역을 찾아 하나의 따뜻한 시민운동으로 도배를 해주자는 것이다. 이것은 행정지도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그것 이상의 방책이 없고 보면 설득력이 있는 제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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