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결실을 향해|조각가 이정자씨|국전 출품 준비로 바쁜 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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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집가고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고,「양」에서「여사」로 가는 고된 길을 걷기에 10년내 계속해온 국전 출품을 작년에는 거둘 수밖에 없었던 이정자 여사는 지난 8월 흙을 개었다. 「아틀리에」를 마련 할 수 없는 신접살림, 좁은 마당 한복판에 화전 받침대를 내다놓고 작업복 바지를 입고 나섰던 것이다. 다시 오는 10월, 이 가을이 또 한번 덧없이 흘러 가 버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한전 근무 장문수씨)의 출근 준비를 도와주고 나면 근영(3), 준영(l) 두 아들이 엄마를 불러 대고, 틈을 얻어 마당에 내려서 봤자 땡볕이 내리쬐지 않으면 장마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울고 싶고 초조하고 그래도 매달리고 있는 자신이 어이없기도 했다.
이른 새벽과 한밤중만이 가장 완벽한 작업 시간이 될 수 있었다. 마당에 전등을 끌어 내놓고 밤 한시 두 시까지 신들린 여자처럼 흙을 주무르기도 하고, 이른 새벽 작업장에서는 막 입을 벌리고 피어 나는 나팔꽃과 마주치기도 했다.
60년 가을 서울 예고 3학년 학생으로 국전에 첫 입선, 그후 이대의 2학년, 4학년 때 그리고 대학원 1학년 때 특선을 차지했던 이정자씨는 앞으로 국전에서 세번 더 특선을 차지하면 추천 작가가 된다. 왜 쉬지 않고 흙을 주물러야 하는지, 그 마지막 기원을 알 수 없는 머나먼 예술의 길에서「추천작가」가 된다는 것은 적어도 현 싯점에서는 가장 명확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목표가 선명한 젊은이답게 이정자씨는 행복한 기대로 앞으로 몇 해 가을을 보낼 것이다.
지금까지 소조만을 출품했던 이정자씨는 이번 작품을 목조로 계획하고 지금 한창 흙으로 본을 뜨고 있다. 소재가 달라졌다는 것 이외에 또 하나 달라진 점은 그가 줄곧 다뤄온「여인」이 두 아기를 갖게 되었다는 것.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늘 홀로 서있던 그의「여인」은 금년 가을 우연히 어깨와 다리에 매달리는 두 어린것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고된 주부 수업에서 얻어진 내면의 변화이며 성장일까, 발돋움하는 주부 작가 이정자씨는 그렇게 믿고 싶다고 말한다.

<장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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