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쓰레기 투기, 불법 분쇄기까지 성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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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에 사는 회사원 정모(29)씨는 지난달 온라인 쇼핑몰에서 음식물쓰레기 분쇄기를 구입했다. 좁은 원룸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보관하느라 악취로 고생한 데다 매번 집에서 100m가량 떨어진 수거함까지 걸어가기가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정씨는 “50만원이 넘는 고가 제품이지만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정씨는 이 분쇄기가 환경부 인증을 거치지 않은 불법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주부 박모(42)씨는 최근 반상회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랐다. 일부 주부가 음식물쓰레기를 변기에 흘려보낸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박씨는 “배출량에 따라 돈을 내다보니 부담을 느껴 아예 변기 등에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주부가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6월 1일 시행된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가 오는 8일로 100일째를 맞는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상황이다. 불법 분쇄기를 사용하거나 변기로 음식물 찌꺼기를 흘려보내는 등 편법도 등장하고 있다.

 환경부는 올 초부터 음식물쓰레기 분쇄기 20여 종의 판매를 허용했다. 싱크대 배관에 분쇄기를 설치해 음식물쓰레기를 분쇄하고 이 중 20%만 하수구에 배출하는 식이다. 하지만 시중엔 환경부의 인증을 거치지 않은 불법 분쇄기까지 등장하고 있다. 불법 분쇄기는 환경부 인증 제품과 달리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 음식물쓰레기를 100% 분쇄해 배출한다. 주요 포털사이트에 ‘음식물쓰레기 분쇄기’를 검색하면 인증을 거치지 않은 제품의 온라인 쇼핑몰 광고가 수십 건 올라와 있다.

 불법 분쇄기를 사용하거나 변기를 통해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할 경우 찌꺼기가 하수구에 쌓여 배관이 막힐 수 있다. 별도의 약품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수처리 비용도 늘어난다. 하지만 자치구에선 단속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모든 가정을 일일이 돌며 점검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방법밖엔 없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아직도 새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별로 음식물쓰레기 배출 방식이 제각각이라 형평성 논란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P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정모(33)씨는 지난달 관리비 중 음식물쓰레기 수거비로 2282원을 냈다. 그동안 정액 형태로 1500원만 지출했으나 종량제가 시행되면서 782원이 늘었다. 이곳엔 가구별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을 계산해 수수료를 따로 부과하는 RFID(무선 주파수 인식장치) 수거기가 없다. 세대별로 동일하게 수수료를 나누는 단지별 종량제가 적용된다. 정씨는 “부부 둘만 사는 집과 네 식구가 사는 집이 같은 돈을 내는 건 종량제의 취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는 형평성 문제가 있는 단지별 종량제를 RFID를 활용한 가구별 종량제로 단계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예산이다. RFID는 대당 200만원의 설치비가 들어간다. 서울시 전체 공동주택에 도입할 경우 약 400억원이 소요된다. 그 때문에 자치구에선 RFID 도입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간 지적됐던 자치구별 종량제 봉투 가격 격차 문제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봉투 수수료는 각 자치구가 조례로 결정하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손국희·안효성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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