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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시장 앞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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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5년이다. 그 당시 왜, 어느 정도의 위기가 있었고 어떤 수습 방안이 동원되었는지 복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동안 수많은 경제학자와 분석기관이 부지런히 정리한 자료가 넘쳐난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다소 이견이 있겠지만 세계 경제상황에 대한 대체적인 인식은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은 완만한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고 유럽은 힘겹게나마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고 중국 경제는 둔화하는 모습이다.

 국제금융시장에 잠재되어 있는 위험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의 돈풀기가 끝나간다고 하는데 미국 경제나 금융시장은 그래도 괜찮을까. 유럽 재정위기는 마무리된 것인가. 아베노믹스가 도박이라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 중에서 눈앞에 가장 가깝게 다가와 있는 변수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다. 지난 4년 넘게 세 차례에 걸쳐 지속되어온 미국의 돈풀기가 당장 이번 달부터 축소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로이터통신 등의 서베이 결과 다음 주에 양적완화 축소가 단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양적완화 축소의 영향은 두 가지로 전망돼왔다. 첫째는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흘러 넘쳐간 자금이 선진국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양적완화 자금이 많이 투자됐던 채권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해 주식시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보다는 신흥국이, 주식보다는 채권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두 가지 자금흐름의 교집합인 신흥국 채권시장은 타격이 만만찮을 수 있다. 가나·르완다·잠비아 등의 아프리카 국가들마저 5~6% 수준의 금리에 달러화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을 정도로 버블 논란이 컸던 시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알려진 악재는 악재가 아닐 수 있다. 뻔히 알고 있는 위험에 눈뜨고 당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알려진 위험요인이라고 해도 국제금융시장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작아 보이던 게 빠르게 끓어 올라 위기로 커지는 걸 봐왔기 때문이다. 리먼 사태 이전 미국 부동산 시장과 주택대출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이나 시장이 모르지 않았다. 재정위기 이전에 유럽의 재정여건이 취약하다는 점을 과연 시장 참가자들이나 정책당국자들이 몰랐을까.

 양적완화나 유럽·일본·중국과 관련된 이슈들이 아무리 식상해 보여도 중국집 메뉴판에서 짜장면 쳐다 보듯 할 일은 아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은 소문이 나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다는 것이지 잔치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양적완화 축소나 유럽 재정위기, 아베노믹스가 익숙해졌다고 해도 언제 어떻게 엉뚱하게 불똥이 튈지 모른다.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중국 경제가 연착륙하더라도 착륙은 착륙이고 충격은 불가피하다.

 주요 7개국(G7) 회담 등 국제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회담에서는 다음과 같은 성명서 문구가 상투적으로 삽입된다.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은 경제성장에 바람직하지 않으며(Excess volatility and disorderly movements are undesirable for economic growth)….”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에는 바람직한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은 위기의 본질적 특성이다.

 양적완화 축소가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일부 동남아 신흥국이 불안한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체로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있고 금융위기 이후 단기차입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이다. 위기에 취약할 수 있는 명분을 일정 부분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두 가지 위험요인 모두 한국과 반대되는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일은 아니다. 위기는 때때로 합리적인 인과 관계를 무시하고 전염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희망이 아닌 균형 잡힌 전망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