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식<이화여대 교수·신문학>|여대생이 본 농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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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박봉으로 생활을 근근 꾸려나가는 서울의 중산층까지도 언젠가는 전화·텔리비젼·냉장고·세탁기·자가용차가 그들의 생활목록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와 같이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있는 도시인에게,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근대화의 대열에서 제외되어있는 농촌주민들의 사정은 먼 아프리카의 일과도 같이 생각될는지 모르겠다.
농촌계몽을 다녀온 한 서울의 여대생은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그다지도 심한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실감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이나 일본과 유럽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우리의 농촌사정이 어떻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게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면서 우리자신들을 좀더 알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학생이 다녀온 곳의 한 국민 학교 아동은 5학년인데 한글도 재대로 못쓰더라는 것이다. 1년의 학습일자가 2백10일이건만 그곳의 아동들은 논과 밭일을 돕느라고 평균 90일정도 밖에 등교하지 못하는 형편인데 이것은 일할만한 젊은이들의 이농 현상 때문에 노동력이 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시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예사인 것 같지만 그 농촌의 사정은 국민학교에서 중학교에 진학하는 율이 10%밖에 안되므로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그 나이에 벌써 장래에 대한 체념의식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 여대생이 낮에 돌봐주던 반 아이는 귀에서 고름이 오랫동안 나왔었는데 약도 쓰지 않고 치료도 않고 있었다. 1백50호 가량 사는 6개 자연부락에 병원은 고사하고 진료소조차도 없었으며 병원은 버스로 약 40분이나 가야하는 곳에 있었는데 부모들이 돈도 없지만 위생관념이 서있지 않은 것이 더 문제라고 했다.
또한 소·돼지·닭을 기르기는 하나 팔아서 생활에 보태 써야하므로 고기종류라고는 1년에 2∼3번 밖에 맛보지 못하며, 7∼8명의 식구가 쓰는 한 달의 잡비는 그 여대생의 한달 용돈보다도 못하다는 것이다.
하루에 14시간 이상의 노동을 해야 겨우 끼니나 이어가는 형편이다. 유일한 희망은 자신들의 전철을 자녀들에게는 모면시키자는 자녀교육까지 앞길이 막히니까 체념의식에다 자포자기에 빠져 버린다는 것이다.
농민들의 말은『비료값은 비싸 고곡가는 싸기 때문에 구태여 농사를 힘들여 짓느니 보다는 될 수만 있으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서 막벌이라도 하겠다는 것이 그곳의 공통된 의견으로 나타나있다는 것이다. 농촌에서는 바캉스 코로나 도르트문트 코피니하는 외국어가 그들의 생활 술어가 되기에는 요원한 일같이 생각되며 우선 전깃불만이라도 들어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 여대생의 바라는 바이다.
어딘지 무엇이 잘못돼있음을 절실히 느낀다면서 우리 나라 농촌들이 모두 자기가 갔던 곳같이 그렇게 불우하지는 않겠지만 마이·카를 바라는 도시인과『자식을 중학에라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농촌주민과의 격차는 혹시나 한국과 미국과의 생활차이와도 같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그 여대생은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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