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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노믹스’, 실용노선으로 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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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시대’가 열렸다. 경제는 사람이 하는 것이니, 누가 경제운용을 책임지느냐에 따라 경제는 확 달라진다. 재력가든, 사업자든, 봉급쟁이든 국민 개개인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바로 영향을 받는다. 근로소득세를 낮추고 재산세를 높이는 한 가지만 갖고도 개개인의 살림살이가 달라지게 된다. 모두의 이목이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쏠려있는 이유다.

노 당선자는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중시하겠다”고 밝혔다 (2002년 12월 31일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 “충격적 조치는 없을 것이다”고도 했다. 새 정부에서도 현 정부의 경제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살아 움직이는 경제를 상대로 하는 정부 정책이 마냥 같을 리가 없다. 바늘 끝에 찔려 풍선이 터지듯, 사소해 보이는 정책 하나로도 경제는 출렁일 수 있다.

노 당선자 진영은 현 정부를 ‘인수’ 중이다.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별관에 자리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그 일을 한다. ‘인수’란 버릴 것은 버리고 새 정부가 취할 것만 골라내는 작업이다. 인수위 경제1분과의 한 위원은 “우리는 당선자의 수족”이라고 했다. ‘인수’의 기준이 노 당선자의 공약과 경제관이란 얘기다.

주류 경제학의 ‘시장 방임’과 ‘정부 개입’의 잣대로만 보자면, 노 당선자가 내놓은 공약과 그가 밝힌 경제관의 키워드는 ‘개입’이다.

물론 노 당선자는 “시장과 기업에 개입하는 정부의 권한과 기능은 작을수록 좋다”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개입’의 논거는 분명해 보인다. 시장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시장이 완전해지고 공정한 룰이 세워지면 ‘개입’을 거두겠다는 설정도 전형적인 개입주의의 모습이다. 최소 수준의 공공서비스를 세계적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 당선자 진영에선 이런 불완전한 시장에서 약자들이 차별받고 있고, 이것이 경제의 효율성을 해친다고 여긴다. 이같은 비효율을 제거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세우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것이 이뤄지면 경제는 더 많이 성장한다. 분배를 중시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분배 없는 성장은 지속할 수 없고, 분배를 통한 불평등의 완화는 성장의 안정적 기반을 이룬다고 본다. 노무현 진영의 ‘7% 성장론’은 여기서 나왔다. 새 정부 경제정책의 출발점도 이곳이다.

노무현 시대를 가장 떨면서 맞이할 것으로 지목된 이들은 재벌이다. 노 당선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재벌의 횡포와 불공정관행을 막아야만 시장의 룰이 확립되고 경제도 활발하게 돌아간다”고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벌은 현실적으론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새 정부도 이 점을 인정한다. 노 당선자 진영에선 “삼성전자 같은 회사 3개만 있으면 한국경제는 문제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대기업과 재벌을 구분한다. 노 당선자는 당선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대기업은 대기업, 재벌은 재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왕성히 경제활동을 하고 성장하는 것이 경제에 중요하다”면서도 “불합리한 재벌 시스템은 지금 고치지 않으면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재벌정책은 큰 테두리에서 DJ정부의 기업구조조정 5+3원칙을 승계한다 (5원칙은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상호채무보증 해소,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핵심역량 강화, 책임경영 제고 등이며, 3대 보완 원칙은 제2금융권 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 억제 및 부당내부거래 차단, 변칙 상속·증여 방지 등이다 ) . 새 정부는 이 원칙을 더욱 엄격하게 집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원칙들이 DJ정부 후반기에 상당히 흐트러졌다는 것이 노 당선자의 평가다.

출처: 포브스 코리아 이상렬 중앙일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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