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개도국 표밭에 돈 뿌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일본이 정부개발원조(ODA)를 활용한 외교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임이사국 신규 진출에 필요한 유엔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개발도상국의 표밭을 돈으로 다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란 판단에서다.

◆최대 무기는 원조 규모=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22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참석해 개발도상국 지원을 강조할 예정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ODA 재원을 아프리카 등의 빈곤국 지원에 집중 투입할 방침이라고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또 고이즈미 총리가 7월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 회담(G8)에서도 채무 규모가 많은 국가에 대한 채무를 전면 탕감한다는 것을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의 안보리 진출 전략의 최대 무기는 '원조 대국'이란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본은 유엔 분담금은 물론 ODA 규모도 1991년부터 9년 연속 세계 1위였다. 지난해엔 8169억 엔으로 미국에 이어 2위였다. 최근 10여 년간 세계 ODA 총액의 20%가량을 분담했다. 지난번 인도양 지진해일(쓰나미)에도 가장 많은 지원금을 내놓았다.

◆재원 확보 어려움=그러나 일본 정부도 재원 확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90년대 초반 이후 장기불황이 계속되고 재정이 악화하면서 일본 내에선 ODA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 결과 일본의 ODA 예산은 6년 연속 감소 추세다. 내년 예산에서도 올해보다 3.8% 적은 7862억 엔이 편성돼 있다. 이 때문에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예산 비율은 0.2%대에 머물고 있다. 유엔이 선진국들에 요구하는 목표 수치인 0.7%에는 한참 못 미친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유엔 개혁 보고서에서 선진국들에 2015년까지는 목표를 달성할 것을 요구했다.일본을 방문한 로버트 오어 유엔 사무차장보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ODA 목표액 달성을 위한 시간표를 만들고 실행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머지 선진국이 증액하고 있는 것도 일본으로선 부담이다. 프랑스는 2012년, 영국은 2013년까지 목표액수 달성을 선언했다. 미국도 증액에 나섰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빈곤 지역의 소외감이 선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테러 원인이 되고 있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도 안보리 개편이 본격 논의되는 9월 유엔 총회 이전에 ODA 중장기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재정파탄 위기로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에 예산 증액을 요구할 수 없어 고민"이라며 "대신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가 발전한 중국에 대한 ODA 지원금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2008년까지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개발도상국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거의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