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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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언젠가 영국하원에서 어떤 의원이 다른 의원을 가리켜「레프러시」(leprous)라고 욕했다 하여 말썽이 일어난 적이 있다. 이때 문제를 일으킨 의원은『자기는 단지 문둥병 환자처럼 썩은(leprous)…운운이라고만 말했을 뿐』이라고 해명해서 사태는 가라앉았다. 그러나 사실은「레프러지」라고 말했다가 말썽이 나자 그렇게 궁색하게 돌려댄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문제의 발언을 놓고 그 의원은 분명히「레프러지」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신문이 있었다면 사태는 그렇게 어물어물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문사 축에서는 틀림없이 정확한 보도라고 고집할 것이기 때문에 의원이 끝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하면 이번에는 국민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나라 국회의원의 원내 발언 보도에 민-형사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법무부의 유권해석은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법무부의 해석에 따르면 정확한 보도가 오히려 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니까, 문제되는 것 은 당연한 일이다.
원래가 국회의원의 원내발언에는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원내발언의 보도에도 아무런 제약이 있을 수 없다는 게 자유국가에선 어느 나라나 관례로 되어있다. 그것을 규제하는 것은 그저 의원자신의 양식과 편집자의 책임감뿐이다.
영국의 하원에서는 의원을 호칭할 때, 직접 성명을 부르지 않는 관습이 있다. 이것은 군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 성장한 하원이 왕권의 탄력을 막기 위한 신변안정책으로 고안해낸 관습이었다. 그것은 동시에 자유스러운 발언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했다. 원내발언의 보도에 대한 자유도 같은 역사를 갖고 있다. 영국시민혁명 전야에는「베스트·셀러」의 으뜸은 하원의 의사와 발언을 그대로 실은 속기록이었다.
물론 이 속기록에도 누가 말했는가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무슨 말이 오갔는가 하는 것만이 보도되었다.
그 당시에는 이 속기록이 비매품이었으니까 어떻게 그것이 밖에 새어 나왔는지도 비밀이었다. 그러나「핸서드」(Hansard)라는 이름의 이 속기록을 전재한 신문 자체에 대한 시비는 아무도하지 않았다. 그것이 일자 일구 틀리지 않은 정확한 것이라는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무리 탄압해도 원내발언은 구전으로 언젠가는 밖에 새어 나가게 마련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때의 부정확성에 대한 두려움에서도「핸서드」의 보도를 막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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