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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광복군 시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해방의 종이 울리던 그 감격의 날인 1945년8윌15일 나는 광복군 제3지대본부가 있었던 중국안휘수부양현구리구라는 고장에서 동지들과 같이 새로운 역사의 날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곳에서 일본군과의 거리는 1백50리.
항시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비상경계태세 아래 있는 전투지대이며 차마는 통과할 수 없게 수호를 몇 겹으로 파놓은 방어요새이기도 하다.
8월12일 우리는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했다는 보도를 들었고 15일 일본측의 중대방송이 있을 것이라는 예고는 알았으나 막상 그날, 일본천황의 목멘 소리로 『무조건 항복한다』는 방송을 들었을 때의 흥분과 감격은 나의 생애를 통하여 영영 잊을 수 없다. 이 소식이 재빨리 동지들에게 알려지자 모두 서로 얼싸안고 거창한 울음바다를 이루고야 말았다.
너무나 쌓이고 쌓였던 기다림이 드디어 오고야만 벅찬 기쁨과 민족정기의 승리감이 겹친데다가 강적 일본이 이처럼 빨리 패망할 줄은 미처 몰랐던 놀라움이 뒤섞여 동지들의 울음은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다.
이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노 혁명가인 이복원장군은 동지 전원을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당시 지대장 김학규장군은 중경에 출장 중이었고 이 장군이 대리해서 부대를 지휘하고있었던 때였다. 작달막한 키에도 군복이 틀에 잡힌 미국사관학교 출신인 그는 이미 60을 넘은 천신만고의 굳은 지조와 투지력을 가진 독립지사였다. 삽시간에 수백 명의 동지가 집합되자 태극기를 우러러 애국가를 봉창하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있은 후 그는 침착한 태도와 어조로 다음과 같은 요지의 훈시를 했다. 『지금 우리 동지들이 지나친 흥분에 울고있을 때가 아니다. 왜적이 비록 무조건 항복을 한다고 해도 일목군의 완전무장해제가 끝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고 지금껏 조국광복을 위해 공작과 전투와 특수훈련(OSS)에 힘써 왔지만 우리의 힘으로 직접 조국을 해방하지 못함이 큰 유감이며 장차 조국재건의 중요한 파업이 더 무거우니 혁명가다운 냉철한 자세로 돌아가라』는 것이 골자였다. 이러한 심금을 울리는 훈시에 이어 우리는 지대가를 우렁차게 하늘이 터져라 하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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