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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감사하다"…100세 광복군 거수경례, 마침내 고국 왔다
일본 내 마지막 생존 애국지사로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 활동했던 오성규 지사(100)가 13일 고국으로 돌아왔다. 오성규 애국지사가 13일 오후 서울현충원 김학규 광복군 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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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 內 원수부는 계엄사령부 … 국방력 증강 이끈 최고 권력
━ [대한제국 120주년] 다시 쓰는 근대사 비상계엄체제와 원수부 경운궁(현재 덕수궁) 대안문(大安門·현재 大漢門)의 오른편 2층 서양식 벽돌 건물이 대한제국의 계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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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에 대구 독립운동가 2명 타계
김인 선생 생전 모습. 대구지방보훈청 제공일본에 맞서 조국의 독립에 앞장 선 독립운동가 2명이 지난 설명절 기간 동안 잇따라 타계했다.독립운동가 김인(金仁) 선생(사진)은 지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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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만든 광복군, 어떤 군대였을까
얼마 전부터 신문이나 TV뉴스를 보는 어른들의 입에서 한숨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시사에 관심이 있는 소중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겠죠. 나라가 위기에 처한 적은 예전에도 많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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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事思史] 근대를 말하다 : 요약 18
일제의 항복 소식에 식민지 한국의 일반 백성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지만 정작 독립운동가들, 특히 해외 인사들의 반응은 달랐다. 대한민국 임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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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 임정 외무부장 종손자가 대통령 안내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안 백범 김구 선생 집무실 앞에서 조범래 독립기념관 학예연구관(오른쪽)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조 연구관은 임시정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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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만 바뀐 역사, 미·소 군정으로 외세 위력 여전
광복군. 김구(가운데) 선생의 왼쪽이 지청천, 김학규, 오른쪽이 차리석, 한 사람 건너 이시영 등이다. 광복군은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려 했으나 일본의 조기 항복으로 작전이 무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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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애국지사 조동성 선생
일제 강점기에 광복군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조동성(사진) 선생이 18일 오후 7시4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91세. 1920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44년 1월 중국 허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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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박정희를 알지만 누구도 박정희를 모른다③
생존_찢어지게 가난한 모친, 낙태하려 마신 간장 뚫고 태어나다 운명_3군을 다스릴 관상,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똑같은 사주 욕망_일본장교·北내통 소령…긴 칼 차고 싶던 權富 지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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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애국지사 이차영 선생 外
◆애국지사 이차영 선생 애국지사 이차영(사진) 선생이 29일 오후 2시31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86세. 고인은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모병 활동을 펼치다 광복을 맞았다.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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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비밀광복군이었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밀광복군'으로 기술한 육군본부의 '창군전사(創軍前史)'가 발행 이후 26년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세계일보가 10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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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7)상해임시정부(43)|조경한(제자·조경한)
광복군군사계획서 작성을 마친 나와 지청천 장군은 즉각 남파·백범 두 사람과의 최종 협의를 거쳐 이를 가지고 중국정부의 서은증을 찾았다. 우리는 사전에 계획한대로 격동법을 쓰기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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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창군전후(11)이경석(필자는 제자)
경비대의 초창기에는 갖가지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 중에도 사병들이 장교를 구타하거나 배척한 이른바 하극상사건이 많았으며 한국장교와 미군간의 충돌도 적지 않았다. 제3연대장 김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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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광복군 시절
해방의 종이 울리던 그 감격의 날인 1945년8윌15일 나는 광복군 제3지대본부가 있었던 중국안휘수부양현구리구라는 고장에서 동지들과 같이 새로운 역사의 날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