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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원폭실험은 예정보다 늦게 폭발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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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히로시마」(광도) 와「나까사끼」(장기)에 원폭이 떨어진 지도 벌써 25년, 그런데 이에 앞선 1945년 7월 16일 미국 서부 「뉴맥시코」주 사막에서 세계 최초로 폭발된 원자폭탄은 그 탄생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도 어느 전화 교환양에 의해 「저항」(?)을 받았었다는 「에피소드」가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다음은 당시 정보부원의 하나로 공교롭게도 이 사건에 뛰어든 「알·베네트」씨의 수기인데 필자는 지금 「워싱턴」주 「에버레트」에 살고 있다.
세계 최초의 원폭실험이 있기 1개월 전인 45년 6월 나(알·베네트)는 원폭제조 계획을 위해 창설된 「맨해턴」기술관구 소속 육군 최고기밀 정보부대의 일원으로서 「뉴멕시코」주 「앨텀고드」 북서사막지대에 마련된 「트리니티」 (삼위일체)라 불리는 기지에 도착했다.
나는 역사적 폭발을 볼 수 있는 절호의 장소인 인구 3천 7백정도의 작은 마을 「소콜로」를 찾아 나와 동료 「해럴드·젠슨」은 그곳으로 떠났다.
실험 예정시각은 상오 4시였다. 우리가 「소콜로」교외의 길가에서 폭발이 일어날 쪽을 향해 거의 멈추었을 때 요란한 폭우가 퍼부었다. 그런데 예정시간인 상오 4시가 벌써 지나 시계바늘은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비바람도 멈췄으나 조용하기만 했다.
『실험이 연기된 것일까』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소콜로」의 거리로 뒤돌아가 어느 작은「호텔」「로비」에서 공중전화로 연락을 취해 보기로 했다. 나는 미리 극비의 연락용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다이얼」을 돌려도 교환수의 응답이 없었다. 전화는 쓸모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 순간 우리가 알아낸 사실은 모든 전화회선이 「로스앨러모스」와 「샌터페이」로부터 이「소콜로」를 거쳐 사막의 실험장에 통해있고 「로스앨러모스」와「샌터페이」에 있는 과학자나 기술자와 사막에 있는 현장 실험담당자 사이의 통신연락은 모두가 이 회선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촌극을 다투어 이 통신두절의 원인을 찾아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통화선을 쫓아 이 마을의 전화교환소를 찾아냈다. 작은 마을이 흔히 그렇듯 이곳도 어느 민가에 있었다.
그 집의「포치」를 통해 전등불이 반짝이는 전화교환대가 보였다.
그런데 역사적인 원폭실험이라는 중대사명이 이 전화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교환양은 교환대 옆의 간이침대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문을 두드렸다. 눈을 비비고 나온 교환양에게 나는 교환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녀는 교환대로 뛰어들었다.
예기치 않던 중대임무를 마친 나와 「젠슨」은 최초의 관찰지점으로 되돌아가 거의 「펜더」에 걸터앉았다.
상오 5시 반 폭발은 일어났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 없이 조용한 가운데 다만 거대한 불덩어리가 번쩍이면서 눈을 어둡게 했다. 이윽고 낮고도 강한 폭음이 점점 가까워 왔다. 곁에 있던 「젠슨」이 별안간 거의 문을 후닥닥 열며 비상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는 나중에 그 당시 어째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아무런 충격이나 강한 풍압을 느낀바 전혀 없었다.
[HKS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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