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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오면 "살려달라" … 자궁근종에 출산도 직장도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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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근종·자궁선근증은 여성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질환이다. 고강도 초음파 치료(하이푸) 등 비수술 요법이 대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 강남베드로병원]

# 회사원 박모(29)씨는 지난달 결혼 4년 만에 이혼 법정에 섰다. 자궁선근증으로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한 달이면 10일 이상을 극심한 통증·출혈에 시달렸다. 진통제를 4시간 간격으로 복용해 위장장애도 심했다. 출혈로 인해 헤모글로빈 수치가 수혈 고려 수준인 5(g/dL, 11 이하 빈혈)까지 내려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임신하면 생리가 멈춰 고통에서 일시 해방될 수 있다고 여겨 아이를 빨리 낳은 뒤 자궁적출술을 받길 원했다. 자궁선근증은 임신까지 방해해 지난해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았지만 실패하고 몸은 더 나빠졌다. “살려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그는 임신을 둘러싼 시댁과의 갈등을 결국 풀지 못했다.

 # 유치원 교사인 황모(27)씨는 자궁근종 탓에 직장을 포기해야만 했다. 5년 전부터 생리 때마다 배를 잡고 떼굴떼굴 굴러다닐 만큼 통증에 시달렸다. 한 달에 4∼7일은 유치원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 힘들어 근무평가가 나빠졌고 가끔 학부모의 항의도 받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잠시 눈을 떼도 사달이 나는데 현재 몸 상태론 대형 사고를 내겠다’고 판단한 황씨는 4월 사직서를 냈다. 미혼인 황씨의 자궁에선 12㎝ 크기의 근종이 발견됐다. “근종의 크기·위치로 봐 개복(開腹)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져 있다.

업무·직장 스트레스도 한몫

자궁근종·자궁선근증·자궁내막증 등 자궁질환이 여성 환자들의 삶을 흔들어 놓고 있다. 양성 암의 일종이라고 하지만 출혈·통증의 고통은 ‘양성’이란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자궁근종 환자 수는 2008년 21만8988명에서 2012년 28만5120명으로 4년 새 30% 늘었다. 자궁선근증과 자궁내막증 환자는 2008년 3만1725명에서 지난해 5만350명으로 59%나 증가했다.

 자궁질환에 시달리는 주 연령대는 40대. 지난해 자궁근종 환자의 48%, 자궁선근증·자궁내막증 환자의 56%가 40대였다. 젊은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20대 자궁근종 환자와 30대 자궁선근증·자궁내막증 환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30대 자궁근종 환자는 5만5000여 명이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남주현 교수는 “만혼(晩婚) 추세에 따라 여성의 초산이 늦어지는 것이 자궁질환 환자 증가의 한 원인”이며 “서구식 식생활과 직장 스트레스도 여성의 자궁을 병들게 한다”고 진단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자궁질환 환자 수는 대부분 과다 출혈·통증 등 증상이 동반된 환자 숫자다. 병원을 찾지 않았거나 증상이 가볍거나 없는 환자를 포함하면 자궁질환 여성은 20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의료계는 추산한다. 지난해 한국·미국·캐나다 등 전 세계 8개국의 15∼49세 여성 2만14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궁 출혈과 통증 여성 연구’ 조사에서 여성이 자신의 자궁근종을 인지하고 있는(대개 증상이 있어서) 비율은 4.5(영국)∼9.8%(이탈리아)로 나타났다. 한국 여성(1353명)의 자궁근종 증상 인지율은 9%로 8개국 중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았다(‘BMC Women’s Health’ 2012년 12호).

수술 않고 치료하는 방법 많아져

하이푸는 시술시간이 30분∼2시간이고 마취 없이 진정제 투여만으로 시술이 가능하다.

인터넷 사이트 ‘우리들의 소중한 자궁사랑 이야기’엔 자궁선근증 진단 후 청혼을 거절해야 할지 고민했다는 20대 여성의 사연이 나온다. 생리 때 응급실에 실려 갔다거나, 산고(産苦) 같은 통증으로 삶의 의욕을 잃었다거나, 직장과 일상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다반사다.

 이처럼 자궁질환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병원에서 흔히 듣는 말은 “임신 계획이 없으시면 자궁을 떼어내시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2년 헬스데이터’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10만 명당 329.6명(2010년 기준)이 복강경을 이용한 자궁적출술을 받아 이 부문에서 OECD 회원국 중 최고를 기록했다.

 자궁적출은 난소 기능의 감소·질건조증·스트레스 등 후유증을 동반한다. 여성의 심리적 충격도 크다.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비(非)수술 요법이 일부 시행 중에 있다. 전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59)는 2004년 11월 워싱턴 소재 조지타운대학병원에서 자궁근종 시술을 받은 바 있다. 당시 50세였지만 자궁적출 대신 자궁을 보전하는 자궁동맥 색전술을 선택했다.

 비수술요법 가운데 최근 주목받는 것은 ‘하이푸(HIFU)’ 시술로 통하는 고강도 초음파 치료다. 하이푸 시술은 MRI나 초음파로 환자의 자궁 이상 부위를 찾아낸 뒤 여기에 초음파를 집중시켜 근종을 태워 없앤다. 국내에선 서울 강남베드로병원·삼성서울병원·강남차병원·의정부 성베드로병원 등에서 시술 중이다. 최근 2년간 1500건 이상 시술됐다.

 강남베드로병원 산부인과 김민우 원장은 “하이푸 시술을 받고 1년이 지나면 근종의 크기가 80∼90% 감소하고 (열을 가해) 괴사시켰던 조직의 약 90%가 소멸된다는 연구논문이 나왔다”며 “자궁선근증은 크기를 줄이기보다 생리통·출혈 등 증세를 완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데 하이푸 시술을 받은 선근증 환자의 80∼90%에서 증상이 가벼워진다”고 설명했다.

 고주파 자궁근종 용해술도 비수술요법이다. 자궁근종 부위를 주사침으로 찌른 뒤 고주파 에너지를 가해 근종을 괴사시킨다. 임신을 원하는 여성에게 고주파 용해술의 안전성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임신을 계획 중인 여성은 자궁근종의 위치·크기 등을 고려해 시술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1990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자궁동맥 색전술은 스파게티 국수 굵기(2㎜)의 얇은 관을 이용해 자궁근종으로 가는 동맥을 찾아 ‘영양공급로’인 혈관을 차단하는 물질을 주입하는 시술이다. 영양 공급이 끊긴 근종의 크기가 서서히 줄어든다. 시술 뒤에 통증·발열·구토와 일시적인 무월경 상태나 난소 기능 저하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채희동 교수는 “자궁동맥 색전술은 임신을 원하는 환자에게 권할 만한 치료는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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