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밤 고속의 장애물 「캥거루」|김찬삼 여행기 <호주에서 제5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텐트 안에서 첫날밤을 쉬고는 새벽 일찍 일어났다.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하여 화부 일을 맡은 나는 장작을 빠개고 불을 피웠다. 많이 보기 위하여 해가 뜨기가 무섭게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모두들 부리나케 텐트를 걷어 버스에 싣고는 다시 북쪽으로 향하여 달렸다.
어느새 우리 일행에는 자연 발생적이랄까 「여행의 노래」가 생겼다. 여러 사람이 합작한 것인데 가사는 황야를 헤매면서 때로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미지의 세계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이 가사 가운데는 어떤 여성이 나를 소재로 하여 지은 『「미스터 김」은 화부이고요』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유머러스」 한 작곡도 합작으로 하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정취에 맞았으며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못지 않았다.
버스가 떠나갈 쎄라 「만국의 합창」이라 할 이 곡을 우렁차게 합창하며 달리고 있는데 스치는 자동차들의 「밤바」에는 철격자를 덧붙인 것이 많이 보였다.
이것은 캥거루가 야행성의 짐승으로서 「헤들라이트」를 보고 뛰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지 않아도 버스길에는 필시 어젯밤 치여 죽었을 캥거루 시체가 보였는데 어미 캥거루 배 주머니 속에서 함께 죽은 새끼 캥거루는 매우 불쌍해 보였다. 양처럼 착하디 착한 짐승임에랴. 한편 양과 소도 간혹 치여 죽는데 캥거루가 많이 죽는 날은 하루에 40∼50마리나 된다고 한다. 이것도 크나큰 교통 사고이며 과실 치사죄로 벌을 받아야 할 법도 한데 아무런 제재가 없는 모양이다. 불쌍한 것은 이 어진 동물뿐.
캥거루의 시체를 보았는지 까마귀 떼가 저공을 날고 있다. 그들이 대 향연이 벌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날마다 길에서 캥거루가 치여 죽을 테니 어쩌면 저 까마귀들은 죽은 캥거루 고기를 도맡아 먹는 전속 까마귀들인지도 모른다. 인도 봄베이에 있는 배화교의 조장장의 전속 독수리처럼….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유독 사나와 보이는 것도 딴은 육식하는 때문이 아닐까.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캥거루의 시체를 보니 왜 그런지 불쌍하여 파묻고 가는 것이 어떻냐고 운전사에게 말을 건넸더니, 그는 『이런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니 그걸 다 어떻게 묻으려고 그러시요. 캥거루가 저렇게 죽어야 까마귀들도 먹고살게 아니요』라고 하지 않는가. 하긴 부조리하고 모순에 찬 이 지상에선 이런 현상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어떤 마을 앞에서 잠시 버스가 멎었다. 시골에서도 캥거루를 애완용으로 많이 기르고 있는데 어떤 트럭 운전사가 기르는 것은 매우 이색적이었다. 이 운전사는 뚱뚱한 사람이 아닌데도 만삭이 된 여인처럼 배가 부르기에 이상도 하다고 했더니 배에다 캥거루 새끼를 품고 있는 것이었다.
또 까닭을 물었더니 『이 새끼 캥거루는 어미가 없어서 이렇게 배에다 묻지 않으면 앙탈을 한단 말예요. 얼마 전의 일이었어요. 밤에 운전을 하고 있는데, 캥거루가 뛰어들지 않겠어요. 부리나케 피 하느라고 급정거를 했으나 그만 부딪히고 말았지요. 쏜살같이 내려보니 벌써 숨을 거두었는데 저만큼 새끼 캥거루가 절룩거리고 있지 않겠어요. 어미는 죽었으나 새끼는 살았지요. 그래 집에 데리고 와서 아내의 젖을 얻어 먹이며 내가 이렇게 어미처럼 배에다 품고 기르게 된 것입니다』 하면서 웃옷 앞단추를 여니까 다리에 붕대를 감은 새끼 캥거루가 깡충 뛰어나 왔다.
나중에 로마의 건설자가 되었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에게 이리가 젖을 먹여 키웠다는 이야기처럼 이 트럭 운전사는 새끼 캥거루를 애지중지 하며 자기 품속에서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도의 성우사상처럼 캥거루를 양과 같이 성스러운 짐승으로 만드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의 자비였다.
이 나라에서는 캥거루를 「숲의 왕」이라고 한다. 이 캥거루란 말이 생기게 된 까닭이 흥미 있다. 1770년대에 영국인 「쿡」이 상륙했을 때 원주민인 「아보리진스」족에게 이 짐승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캥거루라고 대답하는 것 같아서 그대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말은 그 원주민의 말로서 『모른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짐승을 사냥하고 고기를 먹고살면서도 이름을 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