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짧은 말에 메타포 담아 핵심 찔러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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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한국언론학회 회장.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중앙일보에서 3년간 기자로 일했다. 미국 미주리대학 박사. 저서로는 『禮와 藝: 한국인의 의사소통 사상을 찾아서』 『노장·공맹, 그리고 맥루한까지』 『玄: 노장의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1970년대 말 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더니 미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났다. 대학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고 싶었다. 저널리즘 스쿨로 유명한 미주리대학을 선택했다. 거기서 제대로 된 서양 커뮤니케이션 학문을 연구할 수 있었다. 지금도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가르친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노장(老莊)사상에 빠지더니 최근에는『장자(莊子)』의 핵심 부분인 ‘제물론(齊物論)’을 번역한 책 『장자 제물론, 대붕의 꿈에서 나비의 꿈으로』 을 냈다. 김정탁(59·사진) 성균관대 신방과 교수의 얘기다. 소통 부재의 시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의미가 뭔지를 묻기 위해 지난달 28일 김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장자에 빠져든 이유가 궁금하다.
“서양 커뮤니케이션은 기능적인 면을 중시한다. 어떻게 하면 사실을 보다 객관적이고 명료하게 전달하느냐를 가르친다. 그러나 소통은 논리로 되는 게 아니다. 말로는 상대를 설득하거나 이길 수 있지만 상대방의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우리 현실에 맞는 더 높은 차원의 커뮤니케이션 방안을 구하는 과정에서 유(儒)·불(佛)·선(仙)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전통사상을 만났고, 그 사상이 소통의 시작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당연히 동양 사상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서양의 커뮤니케이션과 동양의 그것이 다르다는 얘기인가.
“서양은 표현 수단을 입에 국한하고 있는 반면, 동양에서는 몸가짐도 중요한 소통의 통로로 본다. 어른 앞에서 어떤 몸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길을 걸을 때 어떤 모습으로 걸어야 하는지 등도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인 것이다. 『예기(禮記)』와 같은 책은 사실 커뮤니케이션학이라고 봐도 된다. 동아시아인은 서구인에 비해 오랫동안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해왔고, 또 이것을 가능케 하는 사상적 근거가 분명히 있었다. 서양 이론으로 우리 마음속 소통을 연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나.
“장자의 제물론에 ‘큰 지혜는 여유롭고(大知閑閑), 작은 지혜는 촘촘하다(小知間間)’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의 몸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은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나 여유롭고 담담하다.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려 하지 않고, 누구를 이기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여유로운 것이다. 그러나 작은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꼼꼼하고 세세한 듯하지만 조금 놀라면 안절부절못한다. 상대방의 허점을 틈타 시비를 따지려고만 한다. 동양인들은 이렇듯 인문(人文)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게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언격(言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씨 역시 중요하지 않은가.
“당연하다. 앞에서 말한 ‘제물론’의 뒤 구절에 이어지는 게 바로 ‘큰 말은 힘이 있고(大言炎炎), 작은 말은 수다스럽다(小言詹詹)’라는 것이다. 큰 말은 비록 짧은 구절일지라도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힘이 있다. 반면에 작은 말은 수다스럽기만 할 뿐 상대에게 감동을 주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아무리 구구절절 풀어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링컨의 한마디만큼 이를 가장 잘 설명한 구절은 없다. 로마제국의 명장 카이사르의 용맹을 아무리 설명한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di, vidi, vici)’라는 구절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지도자들의 언어는 그래야 한다. 자질구레하게 늘어놓지 말고 짧은 말에 메타포(은유)를 담아 핵심을 찔러야 한다. 그래야 힘이 있다.”

-왜 장자, 그중에서도 ‘제물론’에 관심을 갖게 됐나.
“제물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물(物)을 제(齊)한다’라는 것이다. ‘사물을 고르게 하다’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일률적으로 획일화하자는 게 아니다. 다양함 속에서 조화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장자는 분석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사물의 진상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예지와 통찰력을 가지라고 우리에게 충고한다. 학 다리가 길다고 자르고, 참새 다리가 짧다고 늘린다면 어떻게 되겠나? 다름 속의 어울림, 그게 바로 ‘제물’이다. 장자는 이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풍부한 우화와 메타포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 최고의 문학 서적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면서도 간접 화법으로 핵심을 찌르는 커뮤니케이션의 보고다.”

-제물론의 우화 중에선 역시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유명하지 않나.
“우리는 이 구절을 ‘원숭이의 어리석음’으로 해석한다. 아침에 3개를 주고 저녁에 4개를 준다니 화를 내다가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준다고 했더니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자의 관점은 주인에게 있다. 주인은 원숭이가 좋아하는 대로 해줬다. 억지로 원숭이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그 뜻 그대로 따라 아침에 4개를 줬다. 장자는 이를 ‘양행(兩行)’이라고 했다. 시비에 구애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따라야 대상과 자신 사이에 아무런 장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또한 동양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겠는가.

-소통 부재의 시대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정치인들은 말로는 소통을 하자고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열지 않는다. 소통(疎通)의 글자 ‘疎’는 ‘틔운다’는 뜻이다. 마음을 열어야 소통이 될 것 아닌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본인이 특정 사안에 대한 결론을 내려놓고선 ‘소통하자’고 했다. 일방통행만 있을 뿐 쌍방소통이 있을 턱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소통했으면 한다. 머리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논리적으론 정교할지 몰라도 상대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그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장자는 이를 허심(虛心)이라고 했다. 마음을 비워야 상대가 다가오고, 서로 받아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온라인 중앙일보·한우덕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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