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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허삼관 매혈기』 위화의 위로 … 죽어서도 가난한 사람들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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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푸른숲, 304쪽
1만3000원

죽음도 계급의 굴레를 벗기지는 못했다. 화장터에서도 사회적 지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고, 이승에서 가난하고 하찮은 삶을 살았던 이들은 죽어서도 제 한 몸 뉘일 묘지가 없어 구천을 떠돈다. 살아있는 것도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머물러있는 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슬렁댄다.

 화재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주인공 양페이도 마찬가지다.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도 홀연히 사라져 혼자뿐인 그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은 없다. 유골함이나 묘지는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며 스스로 검은 상장(喪章)을 만들어 팔에 찬 그는 죽은 뒤 7일간 이승도 저승도 아닌 어딘가를 맴돌며 지난 삶을 되짚는다.

 장편 『허삼관 매혈기』 『인생』 등을 통해 중국 민초들의 팍팍한 삶을 따뜻하게 위로했던 소설가 위화(余華)의 개성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양페이가 떠난 7일간의 여정은 중국의 오늘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와도 같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지만 중국이 이뤄낸 경제성장의 과실은 모든 이에게 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그 그늘은 짙고 고통 소리는 크다. 대형 쇼핑몰 화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지만 정부가 발표한 사망자는 일곱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희생자는 원귀로 떠돌 수밖에 없다. 도심개발로 살고 있는 집이 철거되면서 깔려 죽은 부부, 산아제한 정책으로 태어나기도 전에 유산된 아기들, 불법 장기매매에 나섰다가 불의의 객이 된 사람들까지, 살아서 고단했던 삶은 죽는 순간까지도 한(限)으로 가득하다.

 소설에서 죽어서도 매장되지 못한 자들은 이승에서의 앙금을 털고 그들의 땅에서 영생을 얻는다. 묘지라는 육신의 안식처는 얻지 못했지만 ‘가난도 부유함도 없고, 슬픔도 고통도 없고, 원수도 원망도 없는 평등한 땅’에서 영혼의 쉴 곳을 얻은 것이다.

 이승이든 저승이든, 그 언저리 어디든 하찮은 소시민의 삶은 지난하다. 그럼에도 그들을 살게 하고 버티게 하는 힘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작가는 양페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모두 떠나간 세계에서 기억하기 싫은 가슴 아픈 일을 겪었고, 모두 하나같이 그곳에서 외롭고 쓸쓸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애도하려 한자리에 모였지만 초록색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을 때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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