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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굶주린 돈, 아프리카 노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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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아프리카 같은 프런티어 시장은 이머징(신흥국) 시장의 부속품으로 여겨져 왔지만 이젠 다르다. 프런티어 시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 나이지리아를 다녀온 글로벌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 마크 모비우스 이머징마켓그룹장이 지난 15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의 한 대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홍콩과 중국 등 아시아 신흥국에 자주 가던 그는 올 들어 아프리카 방문 횟수를 늘리고 있다. 모비우스 그룹장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프런티어 시장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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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와 인도네시아발 외환위기 우려에 신흥국 증시가 출렁이고 있지만 프런티어 시장은 소리 없이 강하다. 프런티어 시장은 신흥국보다 개발이 덜 돼 경제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큰 나라를 뜻한다. 주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로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나이지리아·가나·이집트 등이 포함돼 있다. 미국 경제전문 채널 CNBC는 27일(현지시간) “미국의 출구전략 우려에 신흥국 시장에서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지만 프런티어 국가에는 돈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MSCI신흥국지수가 최근 한 달 사이 3% 떨어질 때 MSCI프런티어지수는 1.6% 올랐다. 개별 국가 지수도 상승세다. 올 들어 UAE의 두바이 증시(DFMGI 지수)는 55%, 사우디아라비아 종합주가지수(SASEIDX 지수)는 13% 올랐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가나의 증시가 65%로 가장 상승폭이 컸다. 나이지리아는 29%, 카타르는 14.2% 주가가 상승해 프런티어 시장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같은 기간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각각 6.8%와 6.1%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글로벌 자금이 프런티어 시장으로 향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글로벌 마켓은 정치·경제·사회적 인프라와 경제 발전 정도에 따라 선진국과 신흥국, 프런티어 국가로 나뉜다. 선진국일수록 안정성이 높은 대신 성장 가능성이 낮고 프런티어 국가일수록 불확실성은 크지만 성장의 여지도 많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의 관심은 신흥국이었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선진국 시장을 대신해 새로운 투자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명 브릭스(브라질·러시아·중국·인도)가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확 변했다. 이들 국가의 성적은 초라하다. 외환위기 핵으로 지목받고 있는 인도는 지난달에만 증시가 10%가량 하락했다. 16일엔 하루 사이 4% 급락했다. 중국도 지난 2분기 시장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겨우 맞췄지만 향후 전망은 비관론이 더 많다. 경제체질 개선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른바 리커노믹스(리커창 총리의 경제정책)에 따라 중국 정부는 거품 제거와 긴축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헤알화 가치 하락으로 국내 국채 투자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고 있는 브라질도 비슷한 처지다. 삼성증권 임수균 연구원은 “선진국의 대안으로 신흥국을 개척했던 글로벌 투자자들이 이런 이유들 때문에 신흥국에서 프런티어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런티어 국가들의 경제·정치·사회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지고 있는 것도 투자 매력을 높인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 2월 ‘비상하는 아프리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아프리카 특파원 올리버 오거스트 기자가 112일간 아프리카 대륙 23개국을 육로로 여행하며 취재한 이 기사에 따르면, 그는 수많은 국경과 각종 도로를 통과하며 단 한 차례도 뇌물을 요구받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 도로는 이동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포장돼 있었고 112일 여정 중 9일을 제외하곤 항상 스마트폰으로 e메일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코노미스트는 “무엇보다 여정 중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며 “불과 10년 전엔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프런티어 국가들이 ‘세계의 자원 창고’로 불릴 만큼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개발 잠재력이 크다는 점도 매력요소다. 고령화에 접어든 선진국에 비해 젊은 층 비중이 높고 출산율이 높은 것도 내수시장 확대를 기대할 만한 요소다.

 이런 장점이 부각되며 글로벌 투자자들의 돈이 몰리면서 프런티어 국가 펀드 수익률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펀드평가업체 제로인에 따르면 28일 기준 신흥국 주식펀드의 최근 3개월 수익률은 -8.54%인 데 반해 프런티어 국가 주식펀드 수익률은 5.2%였다. KB자산운용 ‘KB MENA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40%에 육박한다. 국내에서 설정액이 가장 큰 프랭클린템플턴의 ‘프런티어마켓펀드’도 같은 기간 17%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잊으셨나요, 베트남의 쓰린 기억을=2011년 한국투자신탁운용은 베트남 펀드 1호와 2호의 만기를 연장했다. 만기가 5년인 폐쇄형 펀드였지만 누적 손실률이 60%에 달하자 이를 줄여보겠다며 연장을 선택한 것이다. 한투운용만이 아니었다. 그해 베트남에 투자하던 수많은 운용사의 펀드들은 만기를 연장하고 개방형으로 전환하며 부진을 털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베트남 펀드가 처음부터 ‘눈물의 펀드’였던 건 아니다. 2006~2007년 베트남은 제2의 중국으로 기대를 모았다. 2000년대 초반의 브릭스라는 평가가 이어졌고, 당시 최고의 프런티어 국가로 투자자들에게 다가왔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활력이 넘치는 경제 수도 호찌민의 모습은 베트남 투자자들에겐 성장과 수익의 상징이었다. 당시 베트남으로 몰려간 한국 투자자금만 1조원이 넘었을 정도다. 하지만 이후 증시가 내리막길을 걸으며 투자금의 절반이 증발해 버렸다.

 증권업계에선 프런티어 시장 역시 ‘제2의 베트남’이 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베트남 사례에서 보듯 프런티어 국가들은 시장 규모가 작아 외부변수에 크게 출렁거리고 각종 정치적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투자증권 박중제 연구원은 “시장 관심이 커질 때는 뜨거워지다가도 관심이 식으면 급락하는 경향이 강해 개인들이 뒤늦게 뛰어들었다가는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고수익·고위험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과거 금융회사들이 중국을 대체할 유망시장이라며 터키·인도네시아·남아공 펀드 등을 마구 팔다 주가가 급락해 투자자들과 분쟁을 겪기도 했다”며 “금융회사들이 고객에게 투자위험을 알리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경우 고려해야 할 요인이 많다. ‘비상하는 아프리카’란 기사로 아프리카의 미래를 밝게 전망한 오거스트 기자 역시 “일부 금융 전문가들은 아프리카가 머지않아 아시아에 필적할 것이라고 하지만 도가 지나친 상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시아 신흥국의 경우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 정도로 제조업이 발달한 반면 아프리카 프런티어 마켓은 농업 같은 1차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한다. 기후에 민감한 1차산업의 생산물 시장은 작황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얘기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은 “프런티어 국가 증시를 보면 금융과 에너지 업종이 대부분이고 제조업이 빈약하다”며 “이 구조로는 신흥국 시장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선언·홍상지 기자

MSCI지수

미국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에서 작성해 발표하는 지수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런던증권거래소의 FTSE지수와 함께 국제 금융투자의 기준이 되는 대표 지수다. MSCI신흥국지수는 아시아·동유럽·중남미 신흥국 국가를, MSCI프런티어지수는 아프리카·중동 등 프런티어 국가를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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