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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세돌, 대마를 죽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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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2국
[제17보 (203~210)]
黑 . 왕시 5단 白 . 이세돌 9단

천지대패가 난 뒤로 손에 땀을 쥐는 숨막히는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 초읽기라는 또 하나의 추격자가 매정하게 두 사람을 채찍질한다.

그 속에서도 이세돌 9단은 전보에서 흑▲의 팻감에 백△를 먼저 두는 놀라운 순발력을 보여주고 있다(잠시 후 드러나겠지만 이 백△에 의해 흑의 대마는 최후를 맞게 된다).

왕시(王檄) 5단도 이 무렵 자신의 종말을 봤을까. 아니다. 그는 막판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역전승 일보 전에서 주저앉기는 했지만 패싸움의 향방이 미지수여서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왕시가 203으로 패를 따냈을 때 이세돌이 1선에 둔 204의 팻감이 실로 절묘하다. 왕시는 이 한 수를 예상하지 못한 듯(하기야 누군들 이런 수를 예상했으랴)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예감이란 묘한 것이다. 204가 떨어졌을 때 검토실의 구경꾼들은 모두 이 수의 예리함에 감탄했고, 수의 변화는 몰라도 저절로 백이 이길 것이란 예감에 사로잡혔다.

205. 다급한 가운데 최선의 응수다. 왕시도 이미 이때쯤엔 흑 대마의 사활에 머리털이 곤두서고 있었다. 205는 그 삶에 최대한 이로운 수다.

206(백◎의 곳)으로 패를 따내자 왕시는 207에 팻감을 쓴다. 이세돌은 미리 준비해둔 듯 거의 노타임으로 208로 불청했고 209에 이르러 우상 백 대마가 전멸했다. 백이 '참고도'1로 받아주는 것은 흑2에서 다음 팻감이 궁하다. A의 팻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흑B로 따내게 해 이 바둑을 지고 만다 (흑은 C에도 팻감이 있다).

이세돌의 목표는 분명하다. 210에 이어 흑대마 두 개 중 하나를 잡아버린다는 것. 아주 오래전에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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