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스토랑 <1> 웨스틴 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 그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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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유리창 밖으로 조선시대 제단 `환구단`이 내다보이는 나인스 게이트 그릴

고기나 디저트에 브랜디를 붓고 불을 붙여 그을리는 프랑스식 요리법을 ‘플랑베’라 한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플랑베를 선보인 레스토랑은?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의 ‘나인스 게이트 그릴(The Ninth Gate Grill)’이다. 나인스 게이트는 서울의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에 이은, ‘아홉 번째 문’이란 뜻이다.

라이브 스테이크 하우스 나인스 게이트 그릴은 1924년 호텔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 ‘팜코트’가 전신이다. 지금은 흔히 먹는 시저 샐러드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고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를 유행시킨 주인공이 바로 팜코트였다.

단골손님 중에는 유명인사도 많았다. 독립신문을 만든 서재필(1864~1951) 박사, 김종필 전 총리도 팜코트의 스테이크를 즐겨 먹었다. 1970년 ‘나인스 게이트’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위상은 이어졌다. 2000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기념해 노벨상 디너 공식 셰프가 내한해 직접 만찬을 차린 곳도 여기였다.

나인스 게이트 그릴에서 가장 사랑받은 메뉴는 프라임 립이다. 소고기는 미국산 프라임급, 호주산은 마블링 스코어 6등급 이상 와규만 고집한다. 한우는 영주ㆍ횡성ㆍ안성ㆍ양평ㆍ제주 등 전국 팔도를 뒤져 1++ 등급 고급육만 쓴단다.

스테이크 맛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2년 전 우드 화이어 오븐도 설치했다. 참숯을 써서 섭씨 450도 센 불에 굽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러울 뿐더러 향긋한 ‘불맛’까지 느낄 수 있다. 스테이크를 낼 땐 가니시는 절제하고 다양한 소스와 천연 소금만 곁들인다. 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시라는 배려다.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북 『자갓』이 “모든 면에서 최고의 레스토랑”이라고 추켜세운 이유가 있었다.

올해는 L본 스테이크라는 신 메뉴도 내놨다. 소의 허리뼈 1번에서 6번 사이 뼈인 T본 부위를 둘로 나눠 구운 것이다. 나인스 게이트 그릴 지영섭(47) 셰프는 “L본 스테이크를 선보인 건 우리나라 최초”라고 말했다. 웨스틴 조선호텔은 내년 10월 100주년을 맞는다. 나인스 게이트 그릴은 올해로 89년째, 진짜 ‘백년명가’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 나인스 게이트 그릴=룸 5개, 좌석 총 70석. 스테이크로 유명하지만, 팜코트 시절부터 변함없는 맛을 이어온 어니언 수프도 별미다. 어니언 수프 2만1000원, 프라임 L본 안심 9만 원. 10월 11일(금)까지는 조선호텔 100주년 맞이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9월 16일까지는 1939~64년 프랑스 요리, 17일부터 10월 11일까지는 팜코트 당시 메뉴를 선보인다. 100주년 기념 런치 세트 12만1000원. 모두 세금ㆍ봉사료 포함. 지영섭 셰프가 메뉴 구성부터 서빙까지 직접 하며 그날 요리 스토리를 들려주는 ‘셰프룸’을 이용하려면 최소 4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영업시간 오전 7시~오후 10시(주말 제외), 오후 12시~2시30분, 오후 6시~9시30분. echosunhotel.com, 02-317-0366.

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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