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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외국인 학자를 찾아|언어 벽 뚫고 1년 「향약」연구|독일 정부 장학생 「아이커마이어」부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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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독일 「보쿰」대학교 부교수 「디터·아이커마이어」박사는 한국을 공부하고 그 결과 박사 학위를 받은 서독인이다.
1967년 12월 「보쿰」대학에서 학위를 맡게 한 논문은 『연암 박지원의 정치 사상』.
그는 61년 「함부르크」대학의 중국학 연구소에서 1년 동안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동양학연구의 첫발을 내디뎠고 이어 네덜란드의 「라이든」대학에서 3년 동안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약간의 한국어를 곁들인 한국 문화사를 공부했다. 그는 또 「뮌스터」대학을 거쳐 「보쿰」대학에 옮겼으며 거기서 『열하일기』를 읽고 학위 논문의 「텍스트」로 이것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박지원은 중국에 가서 그곳 유학자들을 만나, 유학과 신분 제도 등을 토론한 얘기를 이 책에 기록했습니다.』
그 학위 논문은 지난 1월 네덜란드에서 출판되었다.
그는 「라이든」대학에서 「프리츠·포스」교수한테 중국 역사를 배웠지만, 한국에 여러 번 들렀던 「포스」교수로부터 한국에 대해 조금씩 배워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한국어를 익히기 시작했지만 중국어나 일본어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물론 회화는 한국에 와서 사람들과 만나면서 배웠습니다.』
「보쿰」대학 중국 역사학과의 조교수였던 그는 69년5월 독일 정부 장학금으로 한국에 와서 공부하게 됐다. 현재의 연구 과제는 이조시대 지방 행정 문제, 특히 「향약」. 서울대 도서관을 본거로 이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으며, 오는 7월 중순 본국에 돌아가 논문을 쓸 예정이다.
향약을 공부하면서 호남 지방의 『읍지』, 홍중삼의 『향약통변』(1703), 그리고 「향례합편』『향약삼선』등을 구해 읽었다. 그는 또 완도와 강릉 등 여러 곳을 찾아 부락제를 보면서 이조 시대의 향약과 현대의 향약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향약 이외에 한국의 민속학과 인류학 분야를 연구할 뜻으로 양주 별산대 놀이와 하회 가면극 등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 독일에도 남부의 「프라이부르크」부근에는 가면극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아주 별개의 것이지요. 』
그는 이두현 교수 (서울대 사대)의 도움으로 한국의 「샤머니즘」에 대한 연구의 토대도 닦았다.
「보쿰」대학 동양 연구원에는 현재 한국 문화 학과·중국 문화 학과·중국 역사학과· 일본 문화 학과·일본 역사학과·동양 경제학과·동양 정치학과·동양 지리학과 등 8개 과가 있는데 「아이커마이어」박사는 중국 역사학과 소속이다.
그가 이번에 귀국하면 한국 문화 학과로 옮길 것이며 『한국학과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한국 문화 학과에는 지금 「레빈」박사와 권혁면 박사 등이 있으며 학생은 두 명 뿐. 『한국의 역사 학자들은 서울 중심, 중앙 정부 중심으로 공부하고 지방에 대한 것은 공부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내 생각으로는 그런 태도는 조금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향약을 공부하게 된 것도 그런데 이유가 있다. 『몇 사람의 한국 학자들이 향약을 공부하지만 이 분야가 상당히 무시되고 있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한국 역사를 보면 이조 시대부터 유교화 됐다고 쓰고 있는게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유교가 어디까지 한국 민속에 들어갔느냐는 점이 향약을 공부하게 된 원인도 됐읍니다.』하고 떠듬떠듬 말한다.
중국 역사의 연구로부터 한국의 민속학으로 변천한 그의 관심은 「보쿰」대학에서 계속될 연구로 차츰 발표될 것이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은 언어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주거 문제도 심각하다고 한다. 그는 요즘 장위동 전세방을 얻어 살고 있는데 1년 남짓한 동안에 세 번이나 이사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대학이 외국인 학자들을 위한 기숙 시설을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이번에 귀국하더라도 1, 2년 후에 자료 수집을 위해 다시 한국에 올 것이라고 말한 그는 『한국의 학자들, 특히 역사학자, 민속학자들과의 연구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손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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