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신화 속 바실라 공주는 신라 왕족이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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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24면

이란인들은 페르세폴리스를 탁테 잠시드, 즉 ‘잠시드의 궁전’으로 부른다. 이란의 서사시 ‘쿠시나메’에 따르면 잠시드의 증손인 업틴은 바실라(신라?)의 공주와 결혼한다. 사진작가 정철훈

이란 하면 ‘444’라는 숫자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으로 억류됐던 인질들이 풀려나자, 미국의 한 시사주간지가 그들이 억류된 일수인 그 숫자를 크게 인쇄해 보도한 것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창 언론에 오르내리는 전두환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1981년 무렵이니, 지금 생각하면 딴 세상의 일들 같다. 그로부터 불과 4년쯤 지나지 않아 서울에서도 대학생들이 미국문화원을 점거하는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도 모른 채 나는 444라는 숫자를 호메이니, 이슬람 혁명, 반미 등의 단어들과 함께 썩 불길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대학생이던 89년의 어느 날, 테헤란로를 지나다가 어떻게 서울에 이란 같은 나라의 수도 이름을 딴 거리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느낀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다. 미국의 시각이 주입된 결과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란이 악의 축이었으니까.

실크로드 대장정<2부> ⑤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하지만 이제 이란이라면 ‘손님이 머무는 집’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13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인 루미가 쓴 시로 다음과 같다. ‘인간이란 손님이 머무는 집,/ 날마다 손님은 바뀐다네./ 기쁨이 다녀가면 우울과 비참함이, 때로는 짧은 깨달음이 찾아온다네/ 모두 예기치 않은 손님들이니/ 그들이 편히 쉬다 가도록 환영하라!/ 때로 슬픔에 잠긴 자들이 몰려와/ 네 집의 물건들을 모두 끌어내 부순다고 해도/ 손님들을 극진하게 대하라./ 새로운 기쁨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일 수도 있으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운 마음, 사악한 뜻이 찾아오면/ 문간까지 웃으며 달려가 집안으로 맞아들여라./ 거기 누가 서 있든 감사하라/ 그 모두는 저 너머의 땅으로 우리를 안내할 손님들이니.’

이 시에 나오는 것처럼 이란인들은 그게 누구든 자신의 나라를 찾은 손님들을 모두 환영하고 극진하게 대접할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 입국한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눈이 마주친 이란인들은 거의 모두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중 반 정도는 내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은 뒤 “웰컴 이란!”이라고 말했다. 축구, 삼성과 LG, K팝과 드라마 등 한국에 대한 호감도 환대의 한 원인이겠지만 이방인을 환영하는 건 이들의 천성인 것 같았다. 이 천성을 떠받치는 건 바로 페르시아 제국이라는 위대한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시라즈에서 북동쪽으로 57㎞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페르세폴리스에 가면 이 자부심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왕 중의 왕,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페르세폴리스에 수도를 정한 아케메니드 왕조는 ‘만국의 문’에 새겨놓은 글에서 자신들은 이란 남부의 파르사(Parsa) 지방 출신이라고 적어놓았다. 이들은 민족적으로 아리안족에 속한다. 이 파르사라는 말에서 페르시아가 비롯됐고, ‘아리안들의 땅’이라는 뜻에서 이란이라는 나라 이름이 나왔다. 그래서 흔히 페르세폴리스는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인들의 도시’라는 뜻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현지의 학자 중에는 그렇다면 페르사이폴리스가 되어야 한다며 엄밀한 뜻은 ‘도시들의 파괴자’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스파한의 체헬소툰 궁전은 압바스 왕조 시절의 화려한 벽화들로 사방의 벽이 장식돼 있다.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어원 탐구 같은 건 페르세폴리스의 입구인 ‘만국의 문’ 앞에 서자마자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만국의 문’이라는 이름은 여러 국가의 연합체였던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동쪽으로는 인도, 서쪽으로는 흑해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한 다리우스 1세는 중앙에 복종하고 정해진 세금을 바치기만 하면 고유법과 종교적 전통에 따라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살 수 있는 자유를 허락했다. 페르세폴리스에 새겨진 문장에 ‘왕 중의 왕’이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왕 중의 왕’을 알현하는 곳인 아파다나에 오르는 계단 측면에는 이집트·터키·아프가니스탄 등 전 세계 23개국에서 조공하는 민족의 모습을 돋을새김으로 새겨놓았는데, 어찌나 화려하고 정교하던지 진짜 예술이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좌절감을 들게 만드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페르세폴리스라는 이름을 듣고는 이란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인 마르잔 사트라피가 만든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2007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개봉된 적이 있었다. 69년 이란에서 태어나 79년 이슬람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의 와중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이 애니메이션은 이란이 율법을 중시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억압으로 시달리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차도르를 두른 여인들만의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의 금지령에도 청바지를 입고 아이언 메이든류(流)의 헤비메탈을 듣는 영화 속 10대 소녀의 모습은 요즘 이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스파한에서 내가 만난 17세 소루루가 그런 소녀로 휴대전화에는 친구들과 K팝 가수인 시스타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춘 동영상이 들어 있었다.

이란인들의 자부심인 이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파괴된다. 그들이 약탈한 다리우스 왕의 보물 창고는 현재 주춧돌만 남아 화려했던 옛 시절을 증거한다.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왕조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인들에게 사드세툰, 즉 ‘100개의 기둥을 가진 궁전’으로, 또 ‘40개의 미나레트(이슬람 사원의 첨탑)’를 뜻하는 체헬 미나르 등으로 불리다가 이란의 신화 속 영웅인 잠시드와 연결돼 탁테 잠시드, 즉 ‘잠시드의 궁전’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게 됐다. 이는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등이 묻힌 십자가 형태의 암벽 속 무덤에 낙쉐 로스탐, 즉 전설 속 영웅인 ‘로스탐의 그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비록 귀중한 보물들은 약탈되고 파괴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아 있는 아케메니드 왕조의 화려한 유적은 전설 속의 영웅과 잘 어울렸던 것이다.

잠시드와 로스탐 등 전설 속 인물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은 건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 피르다우시다. 940년 이란 북동부 호라산의 투스에서 태어난 피르다우시가 977년부터 1010년까지 30여 년에 걸쳐서 쓴 대(大)서사시 ‘샤나메(왕들의 책)’는 아랍제국의 침략으로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기 전까지, 이슬람 이전의 역사를 다룬 페르시아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의 지배자들이 아랍어와 아랍문화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페르시아의 전설과 역사를 페르시아어로 썼다는 점에서 ‘샤나메’는 이란인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이 서사시의 끝 부분에서 그는 ‘나는 죽지 않으리니, 내가 뿌린 이 씨앗들이/ 내 이름과 명성을 무덤에서 구해주리라’라고 썼는데, 예언대로 피르다우시의 작품은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다.

코끼리 귀를 가진 아이의 파란만장 일생
피르다우시가 이처럼 유명해지자 ‘샤나메’에 도전하는 아류 작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하킴 이란샨이 쓴 ‘쿠시나메’라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잠시드가 죽은 뒤, 그의 후손 중 하나가 자신에게 복수할 것을 두려워한 자하크 왕이 자신의 동생인 쿠시를 ‘친’에 보내 그 후손을 제거하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친’은 이란 신화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뜻한다. 그 과정에서 쿠시는 페르시아어로 ‘필구스’, 즉 ‘코끼리 귀를 가진’이라는 뜻의 종족을 만나 아내를 취해 아이를 낳는데 귀가 코끼리 귀다. 그래서 아내를 죽이고 그 아이를 숲에 버렸는데, 마침 잠시드의 증손자인 업틴의 아내가 그 아이를 키운다. 나중에 두 집안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코끼리 귀의 아이’는 아버지 쿠시와 싸우게 되는데, 모습이 하도 특이해 아버지는 금방 아들을 알아본다.

우리에게 눈길을 끄는 장면은 그 다음부터다. 아버지와 힘을 합친 ‘코끼리 귀의 아이’는 자신을 키워준 업틴 일가를 공격한다. 위기에 처한 업틴 일가는 집안에 내려오는 문서에 적힌 대로 머친으로 피신한다. 이란 신화에서 ‘안쪽 중국’, 그러니까 더 먼 쪽 중국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머친은 육지와 섬,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그중 섬은 뱃길로 한 달을 가야 나오는데, 테이후르 왕이 다스리는 이 나라의 이름이 바실라(Basilā)다. 바실라 공주인 파러나크와 결혼한 업틴은 어부의 도움으로 14개월 동안 배를 타고 이란으로 돌아온다. 그러자 ‘코끼리 귀를 가진 아이’가 업틴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3000년 동안 한 번도 정복된 적이 없었던 바실라를 완전히 파괴하는 등 이야기는 계속된다.

학자들 중에는 ‘쿠시나메’에 등장하는 섬 ‘바실라’가 한반도의 신라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쿠시나메’는 전설을 노래하는 서사시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역사적으로 고증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다만 피르다우시처럼 불멸의 문학작품을 꿈꾸며 ‘쿠시나메’를 창작한 하킴 이란샨의 참고서적 목록 중에는 ‘안쪽 중국’의 지리에 대해서 쓴 책들도 있었으리라는 점, 그 책들에는 부정확하나마 중국과 그 너머의 나라들에 대해 쓴 책도 있었으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신라라는 이름은 ‘쿠시나메’ 이전의 페르시아 서적에 여러 번 나온다는 사실을 이란의 역사학자들은 이미 확인했으니까. 그렇다면 작가적 상상력이 신라의 공주를 사막과 바다 건너 페르시아 땅까지 데려온 것은 아닐까? 페르세폴리스는 잠시드와 연결되고, 잠시드는 다시 업틴으로, 또 신라의 공주로까지도 연결되는 셈이다. 우리가 역사를 상상할 수만 있다면.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꾿빠이, 이상』 『세계의 끝 여자친구』 등의 소설을 출간했다. 이상문학상ㆍ동인문학상ㆍ황순원문학상ㆍ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중견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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