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부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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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기들 기르기에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몇달 집에 있어보니 조금은 편할 것 같아서 좋긴 하지만 이름좋은 교수봉급으론 일곱 식구가 살아가기엔 빠듯하기만 하다. 부업이니 뭐니해서 돈을 잘 버는 주부들도 많은 모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재주로는 그리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지난 공휴일에 아빠랑 어느 농장에 들렸을 때 나는 길다란 수십개의 가마니집을 발견했었다. 농장주에게 뭐냐고 물었더니 삽목해 놓은 거라는 대답이었다. 낱말자체는 그리 생소한 건 아니지만 실지로 보기는 처음이다. 난 몇평 안되는 우리 집뜰을 생각해보며 천주정도는 심을 수 있을 거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향나무의 삽목감을 얻게되어 새벽부터 아빠랑 나무를 다듬었다. 그라고는 아빠 출근하신 후에 나 혼자 심기 시작했다.
얕은 지식을 동원해서 서투른 손으로 이랑을 만들고 연장을 구해다 이랑위를 돋우고 삽목끝에 약을 발라 꽂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나무를 심는 일이란 꽤 기쁜 일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1천여 그루를 심고나니 얼굴과 손이 햇빛에 발갛게 그을려 저녁에는 따갑기까지 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신 아빠에게 손을 내밀어 보일 때는 자랑스럽고 떳떳하기까지 했다. 아빠도 대견스런 얼굴로 내가 하루종일 심은 삽목들을 바라보며 『잘 키워야지』라고 말했다.
나는 이제 뜰 가득히 1천여 그루의 어린 나무를 키우는 원정이 되었다.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를 지켜보는 것만도 큰 기쁨인데 이 나무들은 내년 봄이면 우리 집 빠듯한 가계에 큰 보탬이 되어줄 것이다. [최태순(주부·마산시평화동5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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