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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I 기준 살짝 넘기니 더 오래 사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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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회사원 김모(49·여)씨는 얼마 전 헬스클럽을 찾았다가 트레이너로부터 “살을 빼라”는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키 1m61㎝에 몸무게 58㎏로 약간 통통한 체형이다. 비만의 지표로 쓰이는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는 22.4로 정상(18.5~22.9)과 과체중(23~24.9)의 경계선에 있었다.

 하지만 트레이너는 “몸무게를 51㎏까지 줄이라”고 했다. 병원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종합검진 결과 몸에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BMI를 언급하며 감량을 권했다. 김씨는 요즘 다이어트 중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살이 안 빠진다”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살찔수록 위험’ 상식 뒤집어

 세계 곳곳에서 ‘살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준 잣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BMI 수치다. 1997년 정해진 현재 국제기준은 BMI 25 이상은 과체중, 30 이상은 비만으로 분류한다. 서양인보다 체격이 작은 한국 등 아시아인의 기준은 더 빡빡하다. 23 이상이면 과체중, 25 이상은 비만이다. 기준은 다르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BMI가 높을수록 병에 잘 걸리고 사망률도 높다’는 게 상식으로 통한다.

 하지만 최근 과학계에선 이런 상식을 뒤집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BMI 기준은 부정확하며 약간 통통한 정도의 사람이 정상 체중의 사람보다 오래 산다는 ‘비만의 역설(obesity paradox)’이다.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미국의 국가보건통계청(NCHS) 연구팀이다. 연초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에 288만 명의 비만도와 27만 건의 사망 사례를 비교한 논문을 실었다. 이에 따르면 국제기준으로 정상체중(BMI 18.5~24.9)인 사람보다 과체중(BMI 25~29.9)인 사람의 사망률이 6% 낮았다. 가벼운 비만자(BMI 30~34.9)도 정상체중 사람과 사망률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고, 중·고도 비만인 경우에만 사망률이 크게 높았다.

중·고도 비만자는 사망률 높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기관인 NCHS 논문이 불러온 파장은 컸다. 미 정부가 그간 일부 학자가 주장해 온 비만의 역설을 공식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다. 이 때문에 월터 윌렛 하버드대 교수 같은 보건 전문가들은 “문제의 논문은 사람들이 비만의 위험성을 간과하게 만들고, (정크푸드를 만드는) 식품회사들의 로비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몇몇 통계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연구 결과가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나고, 분석 대상에 흡연자를 포함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일수록 일반적으로 마르고 사망률이 높다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과학계는 NCHS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지난 5월 유명 과학저널 네이처가 “BMI는 대충 만든(crude) 지표”라고 비판한 데 이어 사이언스도 23일 “더 나은 지표가 꼭 필요하다”는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렉스포드 아히마,미첼 라자 교수의 기고를 실었다. BMI가 단순히 키와 몸무게 수치만 따질 뿐 체중이 많이 나가는 이유가 근육이 많아서인지 지방이 많아서인지, 지방이 많다면 단순 피하지방인지 당뇨·고지혈증 등을 유발하는 내장지방인지 따지지 않는다는 게 비판 요지다.

“BMI 대충 만들어 … 더 정교해야”

 비만의 역설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연구팀은 다음 몇 가지 가능성을 꼽았다. 첫째, 체중이 많이 나가도 근육이 많고 신진대사가 활발한 사람이 있는 반면 체중이 덜 나가고 대사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신진대사가 활발한 사람은 인슐린저항성·혈당 등이 정상이고 심혈관질환 위험도 낮다. 반대 경우는 당뇨·심혈관질환·암 위험이 높은 편이다. 미국인의 각각 10%, 8%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둘째, 투병 중인 사람의 경우 적당한 지방이 병과 싸우는 데 필요한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들일수록 평소 집중적인 관리를 받아 오히려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다.

 2011년 아시아인 114만 명을 대상으로 비만도-사망위험도 연구를 수행한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박수경 교수는 “갑상샘암·유방암 등 다양한 질병 위험을 연구해 보면 조금 통통한 사람의 위험도가 정상체중인보다 낮게 나온다”며 “BMI를 대신할 새 지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교수는 “새 지표를 만들자면 대규모 인원에 대한 장기간의 추적조사가 필요한데 아직은 국가 차원에서 이런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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