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기는 땔감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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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기 요금 현실화 논의가 본격 시작됐다. 새누리당 에너지특위는 그제 당정회의를 열고 전기 요금 체계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연료비 연동제와 주택용 전기 요금 누진제 축소가 핵심이다. 이런 방향으로 요금 체계를 새로 짜면 싼 맛에 전기를 펑펑 쓰는 시절은 사실상 끝날 것으로 보인다. 새 전기 요금 체계는 10월께 확정될 예정이다.

 전기 요금 체계는 1970년대 큰 얼개가 짜인 후 변화가 거의 없었다. ‘원가보다 싸게, 가정보다 산업 우대, 주택용에는 징벌적 누진제’를 적용했다. 경제 논리보다 정치적 변수를 더 많이 고려한 결과다. 요즘 겪고 있는 사상 최악의 전력난을 부른 주범 중 하나로 비난받아 온 것도 그래서다. 당정이 이제야 개편 작업에 나선 것은 만시지탄이다. 그런 만큼 철저히, 제대로 손봐야 한다.

 우선 새 요금 체계는 전력난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한전이 더 이상 밑지는 장사를 하게 해선 안 된다. 100원어치 전기를 팔면 한전은 적게는 6.5원(일반용)에서 많게는 14.7원(산업용) 손해를 본다. 지난해 말 원가보상률은 88.4%다. 1000원을 들여 전기를 생산해 884원 받고 팔았다는 얘기다. 싼 전기가 부른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기는 빛·힘·열을 내지만 주 용도는 빛과 힘이다. 열 내는 데 전기를 쓰는 건 낭비 중 낭비다. 기름으로 전기를 만들면 열 효율은 40%로 줄어든다. 그런데도 비닐하우스부터 지하실 난방까지 전기를 썼다. 전기를 땔감처럼 쓰는 일이 수십 년간 계속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2008년 이후 한전의 누적 적자가 10조원을 넘어섰다. 이 빚은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낭비를 부추기는 요금 체계를 바로잡아야 전력 수급 조절이 쉬워진다.

 산업용 우대 정책도 폐지돼야 한다. 산업용 전기의 평균 단가는 ㎾h당 92.83원으로 주택용(123.69원)보다 많이 싸다. 사용량은 전체의 약 58%로 주택용(14.59%)의 네 배나 된다. 산업용은 놔두고 주택용 요금만 현실화했다간 몸통은 놔주고 꼬리만 손봤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대신 중소기업이나 산업 경쟁력에 급격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전기는 생필품이자 복지의 기본재다. 그런 만큼 누진제를 완화하되 빈곤층이나 전기를 많이 쓰는 저소득·다자녀 가정을 배려하는 정교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전에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원전 비리는 엄중 처벌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벌써 ‘중산층 짜내기’ ‘요금 폭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얼마 전 세법 개정안도 ‘유리지갑 털기’란 비판 한 방에 박살나지 않았던가. 전력난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지혜도 필요하다. 절전 디자인, 절전 공장, 절전 시스템을 국가 전략화하는 방안을 서두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