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최대 13조원 기성회비 대란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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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공립대에 기성회비 대란(大亂)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일부 국·공립대 학생·졸업생들이 “기성회비를 납부할 근거가 없다”며 제기한 반환청구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하면서다. 최근 10년 동안 기성회비를 납부한 195만 명의 국·공립대 학생·졸업생이 모두 소송을 내고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인다면 대학 측은 최대 약 13조원을 돌려줘야 한다. 소송에서 패소한 한국방송통신대의 여성희 홍보팀장은 “35만원의 등록금 중 3만원이 수업료고 나머지는 기성회비다”며 “기성회비를 없애면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된다”고 항소 의사를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도 “기성회비는 법령상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교과부 훈령 등 나름의 기준이 있어 20여 년간 운영된 제도”라며 “만약 대법원에서 기성회비 반환 판단이 나온다면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송 피고인인 한 국립대 관계자도 “기성회비가 사라지면 등록금도 사립대에 비해 적어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국립대로선 학교발전 사업은 추진할 엄두도 낼 수 없다” 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단독 심창섭 판사는 한국방송통신대 4학년 강모(63)씨 등 재학생 10명이 대학 기성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기성회비 반환청구 소송에서 “기성회는 원고들이 청구한 금액 전부(기성회비 전액)를 반환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심 판사는 “법령상 기성회비를 납부할 근거가 없어 부당이득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방통대 기성회는 강씨 등에게 청구금액에 따라 63만4000~396만7000원을 각각 지급해야 한다. 지난해 1월엔 서울대 등 8개 국립대 재학생 4219명이 각 대학 기성회를 상대로 낸 기성회비 반환청구 소송에서 1인당 10만원씩 청구해 모두 인정받았다. 이 소송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서울대 1심 판결 후 국·공립대생 1만5000여 명은 청구 상한액을 200만원으로 정해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현재 이 소송 가액만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법원 관계자는 “판결 취지가 기성회비를 납부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므로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이미 기성회비를 없앤 사립대를 포함한 국·공립대 졸업생도 기성회비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기성회비(期成會費)=학교가 입학금·등록금 외에 운영·시설 확충에 쓸 수 있도록 거두는 돈이다. 과거 문교부(현 교육부) 훈령이 근거다. 사립대에선 2000년대 초 폐지했지만 국·공립대는 계속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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