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중국인 타라고, 아우디 16년 만에 뒤태 성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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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A3에 트렁크가 달렸다. 1997년 첫 출시 이후 16년 동안 뒤꽁무니가 짧은 해치백의 외양을 고수했던 독일 프리미엄 준중형차에 별도의 트렁크가 달린 ‘A3 세단’이 추가된 것이다. 해치백의 천국인 유럽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아우디가 왜 준중형 세단을 내놓았을까. 지난달 만난 악셀 스트로트베크 아우디 재무담당 총괄 부회장(CFO)은 “중국인이 세단형 승용차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세계 1위의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이 세계 자동차 업계의 신차 개발 과정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세계 유수의 브랜드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중국인의 취향을 반영한 신차를 속속 내놓는가 하면, 중국용 특화 차량이 거꾸로 글로벌 모델의 기준이 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움직이는 자동차판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다.

중국인들 넓고 편안한 뒷좌석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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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의 대표적인 해치백 모델 A3. 아우디는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 세단 모델(맨 위 그래픽)을 추가했다. A3세단은 해치백 모델보다 전장(차 앞부터 뒤까지의 전체 길이)이 219㎜ 늘었다.

 이유는 명백하다. 중국이 가장 ‘돈이 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지난해에도 1930만 대의 판매량을 기록해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도 아직 인구 1000명당 자동차 보유대수가 69.4대에 불과하다. 795대인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추가 성장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특징이 뚜렷하다. 판매 대수가 어마어마하지만 아직까지 자동차 소유는 부자의 몫이다. 그렇다 보니 중국 자동차 소유자 중에는 기사를 고용해 운전을 맡기고 본인은 뒷좌석에 앉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뒷좌석이 넓은 세단형 차량에 대한 수요가 높다. 각국의 자동차 브랜드가 일찌감치 중국용 특화 차량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 사례가 중국 시장 특유의 롱휠베이스(LWB) 모델들이다. 보통 차량명 뒤에 ‘엘’(L)자가 붙는 LWB차량은 자동차 앞 축과 뒤 축 간의 거리, 다시 말해 축간거리(휠베이스)를 늘려 뒷좌석을 넓힌 차량이다. 억지로 허리를 늘려 만든 차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 등 날고 기는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중국시장에서만큼은 자존심을 버리고 LWB차량을 팔고 있다. 심지어 BMW 3시리즈 같은 비교적 작은 차량도 LWB 모델을 별도로 판매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서구 언론은 조소를 보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비웃음의 강도가 점점 약해졌다. 중국형 ‘긴 허리’ 차량이 세계 시장용 차량의 기본이 되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벤츠의 최고급 모델인 S클래스다. S클래스는 원래부터 글로벌 LWB모델이 존재했지만, 어디까지나 기본형인 일반형 차량의 파생모델이었다. 그러나 올해 출시된 신형 S클래스에서는 주객이 전도됐다. LWB모델을 기본형으로 만든 뒤 거기에 길이를 줄인 일반형을 파생모델로 덧붙인 것이다. 물론 이 모델의 최대 시장인 중국 때문이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2010~2012년 전 세계에서 판매된 S클래스의 절반(49%)을 중국인이 구매했다. 안마의자와 팔걸이 열선, 발판이 부착된 뒷좌석을 보면 신형 S클래스의 지향점은 더욱 명백해진다. 심지어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자다가 사고가 발생해도 덜 다치도록 안전벨트에도 에어백을 부착했다.

 포르셰의 대형 스포츠카 파나메라의 파생모델인 파나메라 이그제큐티브도 명백하게 중국을 겨냥해 만든 글로벌 모델이다. 이 차량은 일반형보다 휠베이스를 무려 150㎜ 늘려 일반 대형세단 차량 못지않게 넓은 뒷좌석 공간을 뽑아냈다. BMW는 대표적 비아냥거리였던 중국형 3시리즈 LWD 차량을 기반으로 320D그란투리스모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내놓았다. 폴크스바겐의 신형 파사트나 골프가 모두 이전 모델보다 축간거리가 길어진 것도 다분히 중국을 노린 포석이다.

해치백 대표작 아우디 A3, 세단형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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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예 중국인의 취향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신차도 늘어나고 있다. 아우디 A3 세단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상반기 아우디는 총 78만여 대의 판매량 중 4분의 1인 22만8000여 대를 중국 시장에서 팔아치웠다. 본고장인 독일(12만8000여 대)이나 미국(7만4000여 대)보다 월등히 많다. 이 수치를 보면 아우디가 유럽 시장에서 돌연변이나 다름없는 준중형 세단을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쉽게 풀린다. A3세단의 생산공장은 세계에서 단 두 곳, 헝가리 죄르와 중국 포산(佛山)이다. 그만큼 중국친화적인 차량인 셈이다.

 곧 공개할 예정인 포르셰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마칸 역시 태생적으로 중국과 무관하지 않다. 소형 SUV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차종이다. 또한 중국은 미국에 이은 포르셰의 2대 시장이기도 하다. 가격이 5만 유로(7400여만원) 정도로 추정되는 마칸은 포르셰 중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모델이다. 포르셰에 대해 군침만 흘리던 중국 중·상층 소비자들도 접근 가능한 가격대인 셈이다. 포르셰도 마칸과 중국의 연관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포르셰 중국법인 최고경영자(CEO)인 헬무터 브뢰커는 올 초 언론 인터뷰에서 “이 차의 판매가 시작되면 중국은 단숨에 포르셰의 세계 1위 판매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르셰는 올해 11월 22일 개막하는 로스앤젤레스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할 예정 이 다.

벤츠·BMW는 중국형이 글로벌 모델

 이런 현상에 대해 일부 서구 언론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한 외신은 파나메라 이그제큐티브를 두고 “중국 공산당 간부의 아들이 넓어진 뒷좌석에서 즐거워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뒷좌석 안마 기능은 (안마로 유명한) 태국 방콕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라는 등 노골적으로 S클래스 뒷좌석을 희화한 보도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중국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중국형 차량의 개발은 당분간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유럽 소비자나 언론 입장에서는 ‘유럽 스타일’이 훼손되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중국과 자동차 취향이 일부 겹치는 우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장 내년 초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A3 세단처럼 우리에게 더 익숙한 형태의 차들과 국산차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왝더독(Wag the dog)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주객전도의 상황을 일컫는 용어다. 원래는 위정자가 국민이나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연막을 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요즘은 금융 분야에서 비중이 커진 파생상품이 역으로 현물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가리키는 등 경제 분야에서도 자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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