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식 민주주의 틀어막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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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서구식 헌정 민주주의를 전면 거부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헌정 민주주의가 중국 공산당의 권력 장악을 어렵게 하고 중국 사회에 불온한 움직임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사회 안정을 해치는 7대 위협을 담은 대외비 ‘제9호 문서’를 지난 4월 만들어 전국 공산당원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이 19일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이 문서는 당 중앙위원회 판공청이 작성한 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지도부의 승인을 받았다.

 문서는 “중국에 적대적인 서구 세력과 중국 내 반체제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이데올로기 영역에 침투하고 있다”며 헌정 민주주의를 비판했다. 문서는 헌정 민주주의 이외에 ▶보편적 인권 옹호 ▶서구식 언론 자유 ▶서구식 시민 참여 ▶시장 유일주의 ▶신자유주의 ▶중국 공산당의 과거에 대한 허무주의적 비판을 7대 위협으로 적시했다. 이어 “(공산당) 일당 지배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당과 정부에 대한 불만을 유도하기 위해 공직자의 재산을 공개하고 부패와의 싸움에 인터넷을 이용하며, 언론 통제 등 민감한 주제들을 제기해 문제를 일으킨다”고 비판했다.

 ‘제9호 문서’가 나온 뒤 공산당 기관지와 웹사이트는 헌정 민주주의와 시민운동 등을 강력 비난하고 공산당 기준에 어긋나는 일 등을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산당 비판 글을 인터넷에서 차단하고 저명한 인권 운동가 2명을 가택 연금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은 이례적으로 지난 5·6·7일 사흘 연속 1면에 헌정주의를 비판하는 마중청(馬鐘成) 해양안보연구소 고급 연구원의 기고를 실었다. 기고는 “1980년대 이후 미국 정보기관이 자유주의 법 개념을 세계에 전파해 소련 공산당을 몰락시켰다”며 “미 헌법은 자산계급의 생산수단 독점을 보장하면서 자유 민주와 인민 주권을 언급하는 모순덩어리”라고 했다. 신화통신 인터넷판인 신화왕도 지난 1일 ‘중국에서 혼란이 발생하면 소련보다 더욱 참혹할 것’이란 평론을 통해 “인터넷 등에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강조하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서구 자본주의 헌정 모델을 찬양하며 혼란을 선동하는 무리가 적지 않다”고 비난했다.

 시 주석의 이 같은 보수 노선이 시 주석이 추진하는 경제 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시 주석은 집권 1기(2013~2017)의 정치 노선을 결정할 공산당 18차 3중전회(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0월 개최)에서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고 민간 기업의 활동 영역을 넓히겠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을 맞는 12월 26일을 앞두고 대대적인 기념 행사가 예고돼 있어 보수 바람이 거세게 일며 시 주석의 경제 개혁이 무산될 수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시 주석의 행보는 중국 진보주의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이들은 올 3월 시 주석 체제가 출범하자 대대적인 개혁을 기대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지난달 공산당 혁명 성지인 허베이(河北)성 핑산(平山)현 시바이포(西栢坡)를 방문, ‘선물을 보내지 말라’ 등 마오쩌둥(毛澤東)의 시바이포 6개 원칙을 재확인하며 보수주의적 정풍 운동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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