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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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용하(1963~) '지구' 부분

달 호텔에서 지구를 보면 우편엽서 한 장 같다. 나뭇잎 한 장 같다. 훅 불면 날아가버릴 것 같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저 별이 아직은 은하계의 오아시스인 모양이다. 우주의 샘물인 모양이다. 지구 여관에 깃들여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만원이다. 방이 없어 떠나는 새. 나무. 파도. 두꺼비. 호랑이. 표범. 돌고래.

자동판매기는 현대인의 오아시스이자 샘물이다. 사막화로 인해 낙타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막화 속에서 늘어나는 것은 세계 인구와 건조한 모래들뿐이다. 다른 생물들은 점점 무섭게 줄어든다. 절멸의 시대, 나중에는…… 나는 인조잔디가 깔린 야구장처럼, 인간들만 모여서 춤추고 환호하는 지구를 상상할 수가 없다. 세사르 바예호는 이해하리라. 지구에서, 오늘 나는 그냥 아프다.

최승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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